우리 사회는 지금 소통의 부재로 대립이 잦다. 정치는 정치대로 계층은 계층대로 연령별은 세대차로 말이 안 통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따져보면 아이러니한 게 소통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우리나라만큼 갖추어진 현장도 드물다. 단일 언어를 쓰는 나라가 생각 외로 많지 않은 데도 우리는 단일 언어를 쓰는 국가이다. 계층별로 쓰는 언어의 격이 다른 영국을 위시한 유럽 국가들처럼 상중하 계층이 언어로 구별되고 단절되지도 않는다. 세계 최고 수준의 IT국가답게 쌍방향 의시소통은 말할 것도 없고 다양한 매체를 통한 의견개진이나 정보교환이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교육 수준은 어떤가. 문맹률 최저의 나라답게 교육수준도 최고다. 그런데도 갈등지수가 OECD 국가들 중에서 네 번째 순위라고 하니 갸웃해지기도 한다. 여기에 300조 원의 비용이 갈등 해소를 위해 한 해에 소요되는 경비라면 심각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겠다.
우리는 하루 종일 누군가와 소통하며 산다. 글이든 말이든 몸짓이든 표정이든 의미있는 정보를 교환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내가 존재하는 데 꼭 필요한, 있어주어야 하는 다른 사람이 내게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한다면 막말로 혹은 날카로운 가시로 상처 주는 말을 내뱉는 데 주저하게 될 것이다. 소통에서 중시되는 부분이 의미라고 보는데 이 의미는 그것이 가지는 상징으로 상대에게 전달된다. 떡이라는 의미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단순한 떡이 되기도 하고 각자에게 돌아가는 몫이 되기도 하고 엥겔지수를 나타내는 생계비도 되고 때론 잔치 같은 축제나 축복을 상징하는 행복지수가 될 수도 있다. 이 상징이 큰 힘을 가지고 소통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사람들이 대화를 하면서 의사소통을 하고 벽을 만들지 않도록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데 상징을 잘 활용해 전달하려고 애를 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말이 신뢰를 잃은 것은 역설적이게도 말이 너무 많은 탓일 수도 있다. 천금의 무게로 말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선인들이 무색할 만큼 온갖 말 말 말들이 난무하고 어지럽다. 적당을 넘어선 말의 홍수는 말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말만 잘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자극적인 언어로 도배된 인터넷 기사나 댓글들. 대중 앞에 선 지도층뿐만 아니라 일반사람들까지 독한 언어에 중독되어 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말에 대한 신뢰가 추락해 말을 믿지 못하는 사태까지 왔다. 올바른 정보를 주고 올바른 정보를 취해 소통이 원활해지려고 말을 주고받는데 말을 하면 할수록 꼬이고 갈등이 쌓여가는 모습이 안타깝다.
배려와 존중도 일종의 문화라고 본다. 과거 우리의 오욕이기도 했던 도덕성 결여로 부정과 부패가 난무하던 시절이 있었다. 많이 좋아지기는 했어도 경제의 성장을 따라가지 못한 불신이 아직 우리 사회에 남아 있다. 유명한 레가툼 경제연구소에서 발표한 지수를 보면 세계 110개국 중 우리나라는 교육·경제·건강 등은 6위에서 20위권 내외인데 신뢰지수는 부끄럽게도 76위라고 발표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지수를 마음에 새겨 자기성찰의 기회로 삼아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 같다. 신뢰가 없이 난무하는 말은 공허하고 상대에게 우호적이지 못해 소통을 방해할 뿐이다.
정직과 공정이 통하는 사회가 신뢰사회이다. 정직은 나의 유·무익에 관계없이 거짓을 하지 않는 것이고 공정은 어떠한 편견도 없이 상황을 있는 그대로 평가하는 일이다. 단어가 어렵지도 외국어라 이해가 불가해서 해석이 힘들지도 않다. 신뢰사회, 정직과 공정이 통하는 사회, 그것이 벽을 허무는 지름길이고 소통을 위한 전주곡이 될 것이다. 만연한 연고주의가 공정성을 거부하는 악순환을 낳았고 불로소득을 취하는 일이 타인에 대한 도둑질이라고 인식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말이 잘 통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지나친 경쟁에 내몰린 우리 사회의 병폐가 이런 부정적인 현상을 부채질했다는 안타까움에 건강한 토론문화도 기대해 본다. 그 덕분에 글을 정리하면서 내 모습도 가감 없이 찬찬히 살피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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