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500년 전, 신천지를 찾고 있던 폴리네시아 사람들이 1천 마일이 넘는 긴 항해 끝에 태평양의 한 섬을 발견했다. 부족민에게 풍요로운 생활을 보장해 줄 것이란 기대감으로 족장은 마을 주민을 이끌고 신세계로 이주를 했다. 막상 와 보니 정착을 하기엔 조건이 좋지 않았다. 땅은 척박했고 낚시를 하기에도 제약이 많았다. 사람들은 족장의 지도하에 힘을 합쳐 섬을 개간하고 농사를 지었다. 부족민들은 머리를 맞대고 섬의 환경에 적합한 새로운 농사법을 찾아냈다. 그들은 이곳에서 1천 년 이상 번성했다.
1천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섬이 수용할 범위를 넘어선 인구의 증가는 섬의 모든 것을 마구잡이로 착취하게 되어 결국 섬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일정비율로 담을 쌓아 보호했던 숲이 사라지고 동식물도 멸종되고 사람관계도 살벌해졌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보다는 전통적인 방법만 고수하던 족장은 여전히 베고 태우는 농경법에만 매달렸고 제사장은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극단적인 종교의식으로 권력을 지키기에 급급했다. 싸움·약탈·살인이 일상이 되고 강자만 살아남아 겨우 목숨을 유지했다. 유럽의 한 상선이 이 섬에 도착했을 때 섬은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무지로 변해 있었다. 살아남은 소수의 원주민은 모두 노예로 팔려나갔고 그들의 정신과 긴 역사는 허망하게 사라졌다.

이사로 참여하고 있는 한 여성단체에서 리더십 세미나가 있었다. 리더의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한 강연을 들은 후 팀별 과제로 내 준 문제가 이스트 섬의 보전을 위한 리더의 역할 찾기였다. 모임도 사회도 발전하려면 갖추어야 할 요건이 있다. 비전을 가진 구성원 모두가 공동의 목표를 공유해야 하고 구성원 각각이 가진 다양한 재능과 전문성을 잘 활용해야 한다. 성공이든 실패든 결과에 대해서는 공동의 책임이 있고 그러기 위해 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는 리더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리더란 끊임없이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구성원들의 의견을 잘 이끌어내 가장 합당한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 과정이 반석이 되어야 확고한 목표와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혼란이 없다. 조직이 추구하는 바와 구성원이 원하는 방향이 한 곳에서 만나 정점을 이루도록 이끌었을 때, 리더는 리더답다.
사람도 조직도 끊임없는 자기 계발에 게으르지 말아야 건설적 해결방법을 찾아나갈 수 있다. 지도자란 막강한 힘으로 독재를 하고 권력을 독식하는 자리가 아니다.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이므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포용의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자기 머리만 믿지 말고 인재를 활용해 타인의 머리를 적재적소에 잘 활용하는 사람이 진정한 리더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 인물이 세종대왕이다.
신천지를 개척해 번성했던 이스트 섬의 조상들은 탓하며 반목하는 대신 부족의 안녕을 위해 힘을 모았다. 척박한 땅을 개간해 소출을 올릴 수 있는 농사법을 찾아내 익숙한 방법을 버리고 도전했다. 족장과 제사장은 부족을 위해 개인적 이기심을 내려 놓았고 다양한 재주를 가진 부족민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그들의 능력을 활용했다.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리더십을 보여준 것이다.
1천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은 안일함에 빠져들어 변화된 환경을 극복할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기득권을 가진 지도자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질서의 개편보다 기존 방식이 편했다. 공생을 위한 리더십은 사라지고 고립된 섬은 광기로 변해 파멸을 향해갔다. 1천 마일의 바다를 건너온 도전과 1천 년의 번성으로 보아 충분히 새로운 판도를 짤 수 있었을 터인 데도 리더십을 잃은 조직의 끝은 허망했다.

사회나 국가로까지 범위를 넓히지 않더라도 자신을 다스리고 가족을 위하는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일까에 고민해 본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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