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상하이를 다녀왔다. 이름 모를 거리에서 작년 가을 각종 음원 차트 실시간 1위를 휩쓸었던 샹하이 로맨스가 들려온다. 음악그룹인 오렌지 캬라멜의 싱글 음반으로, 방콕 시티에 이어 아시아의 지명이 들어간 두 번째 노래이다. 중국의 지도는 닭 모양을 하고 있다. 그중 상하이는 닭 가슴 부위에 해당된다. 해마다 가는 사람도 갈 때마다 그 변화에 놀란다는 상하이, 10년 만에 간 나는 깜짝 놀라 한동안 말을 잃었다. 중국하면 머리에 떠오르는 앙코르와트의 이미지와 약간의 우중충함, 이상한 거리의 모습이 상하이에는 더 이상 없다. 그동안 개발된 푸둥(浦東) 신구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뉴욕 초고층빌딩 못지않은 높은 빌딩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본래 상하이는 1842년 남경조약으로 개항된 이후 새로운 문물을 흡수해 온 국제적인 상업도시이다. 영국에 의해 중국 최초로 개방된 첫 항구도시지만 개방정책이 실시되기 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여느 도시처럼 별다른 발전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개방 이후 90년대 중앙정부가 이곳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시작하면서 동양의 또 다른 홍콩을 꿈꾸기 시작했고 지금은 세계적인 경제중심 도시가 되었다.
사실 중국에 관한 선입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상하이는 새로운 눈을 열어주는 도시이다. 상하이의 빌딩들은 다양한 디자인의 건축물을 장려하는 시정책에 의해 기발한 디자인으로 상하이 스카이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과거 조계지로서의 흔적이 남아 있는 외탄과 황푸강 바로 건너편 들쑥날쑥 솟은 현대적 고층빌딩은 상하이의 과거와 현재를 강 하나 사이로 이어주는 듯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상하이는 서울면적의 10배, 2천만 명이 넘는 인구를 가지고 있지만 그중 반절은 도시의 외곽지역에서 살고 있다. 역사 속에서 중국의 어떤 도시보다 서양의 문물을 빨리, 쉽게 받아들인 곳이기에 중국의 다른 도시와는 색다른 문화를 접할 수 있으며, 다양한 볼거리·놀거리·먹을거리로 수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특히 일명 ‘도시의 쥐’라고 불리는 자전거로부터 ‘과부차’라 불리는 오토바이, ‘도시의 할머니’라 불리는 공공버스, ‘도시의 아가씨’라 불리는 알록달록한 택시, ‘도시의 주정뱅이’라 불리는 오토바이에 이르기까지 상하이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들이 연출되고 있다.
마지막 여정 길에 상하이시 농산물도매시장에 들렀다. 대부분 농산물은 우리 농산물보다 크고 굵고, 가격은 무척 싸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물론 중국의 기후 조건이 좋고 생육기간이 길어 농산물이 크고 굵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사람들의 손놀림이다. 상인들은 북새통을 이루는 시장통 안에서도 상어가 먹이를 찾듯이 부지런히 손을 놀리고 있다. 심지어 물건을 팔면서도 틈새시간을 이용해 뜨개질에 열중이다.
누가 중국을 게으른 민족이라 했는가? 과거 중국인의 게으른 손들이 의지가 있는 손, 건강한 손으로 바뀌고 있다. 진정 손가락이 건강한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심지어 중국 사람들이 한국인의 근면성을 추월하고 있다. 중국 농산물이 가짜가 판친다고, 중국 사람들조차 무시했다가는 화를 자초할 수 있다. 가짜 농산물은 발본색원하되 상하이사람들을 능가할 수 있는 우리의 근면성을 하루빨리 회복해야 한다.
무역장벽이 허물어진 시대에 중저가 시장에서 이미 경쟁력을 잃은 우리가 다른 제품까지 침식당한다면 기회는 없고 위기만 올 것이다. 경제 기적을 경험한 우리는 그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누구보다 잘 대비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우리는 정말 정신 차리고 있나. 상하이에서 보고 온 농산물도매시장의 활기가 내 눈앞에 선하다
상어는 몸짓도 크고 무시무시해 보이지만, 부레가 없는 유일한 해양동물이다. 그래서 잠잘 때는 물론이고, 평생 동안 쉴새 없이 움직여만 살 수가 있다고 한다. 중국 상하이인들의 ‘상어 정신’은 우리 모두가 짚고 넘어갈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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