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은 두 얼굴을 가졌다. 왜냐면 경제학의 모든 것은 결국 선과 악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잡초를 보자. 잡초는 먹지도 못하는데 잘 번지기만 하는 풀이라고 미움받기 일수다. 농사는 잡초와의 싸움이라고 할 만큼 잡초제거는 한 해 농사의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농촌에선 해마다 여름철이면 이런 잡초와의 전쟁이 필수다. 잡초는 농작물의 성장에 필요한 양분과 수분을 빼앗을 뿐만 아니라, 빛과 통풍을 차해 농작물의 성장을 저해하고, 심지어는 병충해를 일으키는 장본인이기도 하다. 설상가상으로 슈퍼잡초란 게 생겼다. 슈퍼잡초는 항생제가 듣지 않는 슈퍼박테리처럼 생겼고, 논 면적의 25% 정도라고 한다. 이렇듯 넓은 면적의 논이 악성이란 건 큰 문제다. 슈퍼잡초가 무서운 건 수확량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런 잡초를 방제하지 못하면 직파 재배 벼의 경우 수확량이 무려 70%, 모내기한 벼는 44%까지 감소한다는 주장도 있다.
슈퍼잡초는 형태상으로 전혀 구별이 안 돼 농업인들이 제초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제초제 저항성 잡초의 발생은 특정 성분 제초제를 장기간 사용한 데 따른 반대급부다. 농민들이 특정성분을 함유한 제초제를 같은 논에 오랫동안 살포하다 보니 잡초에 내성이 생긴 것이다. 게다가 잡초는 아무리 척박한 황무지라도 잘 자란다. 뽑은 뒤 얼마 되지 않아 단물을 먹은 듯 쑥쑥 자라난다. 그렇다고 잡초를 그냥 놓아둘 수는 없다. 뽑지 않으면 어느새 잡초밭이 되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잡초 같은 인간’이란 말이 생겼을까. 
반면 어떤 잡초가 특별한 약효가 있다는 연구발표가 있으면 그 잡초는 귀한 명초가 되고, 때론 구하기 힘든 품종이 되며, 나중엔 구할 수 없는 절품이 된다. 더불어 잡초는 본래의 의무를 다한다. 폭우 때는 토양유실을 막아주고, 건조할 때는 풍해를 완화시킨다. 단단한 흙은 잡초뿌리가 흙속을 파고들어 부드러운 토양으로 일구어 낸다. 뽑아낸 잡초는 농작물의 부족한 수분을 보충해 주기도 하고 죽은 잡초는 썩어서 퇴비가 되기도 한다. 잡초는 이렇게 선과 악의 두 얼굴을 가졌다. 그저 잡초라고 전부가 해롭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발에 채이고, 제초재로 사라져가는 잡초가 미래의 귀중한 약제로, 식용으로의 높은 가치가 있는 경제재로 등장할지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이처럼 전체 식물사회에서 보면 ‘쓸모없는 풀’은 없다. 모두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아름다운 자연을 구성하고, 산소를 내뿜어 공기를 맑게 하며, 다른 동식물들에게 도움을 주고 받으며 살아간다. 결국, 잡초는 농작물의 생육을 방해하거나 망치는 역기능도 있지만 인간과 자연에 이로운 순기능도 있다는 얘기다.
요즘은 농사지을 때도 잡초를 함부로 뽑지 않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 또한 농작물만큼 귀한 생명이며 우리 삶을 떠받치는 생태계 일원임을 잊지 않기 때문이다. 비닐 없이 농사를 짓지 못한다는 농민들에게 그는 경작 면적을 줄이고 비닐 대신 ‘잡초 멀칭’을 하도록 권한다. 석유에서 나온 비닐에 숨이 막힌 땅의 본성을 회복하고 작물과 사이좋게 자라도록 최소한의 조처만 해두면 잡초는 땅을 비옥하게 만들고 작물 뿌리는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 흙 속의 영양성분을 한층 풍부히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두 얼굴의 잡초는 위협과 기회의 양면성이 존재한다. 향후 ‘잡초의 피해와 이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먼저 잡초를 경제활동에 방해가 되는 나쁜 풀로만 보지 말고 세계 유수의 제약회사들처럼 미개발된 식물자원으로 인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잡초의 위해성과 기능성을 함께 고려하는 경제학적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며, 특히 우리 땅에서 수천년간 자생물로 활용했던 전통지식을 발굴하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지역마다 잡초의 분포와 부르는 이름이 다른 점을 활용, 스토리텔링과 연계한 문화산업 소재로의 개발도 고려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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