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회에서 국가의 대사는 제사[祀]와 전쟁[戎事]에 관한 일이다(“국지대사, 재사여융” 國之大事, 在祀輿戎). 제사(祭祀)는 국가의 위험에 처한 국방상 군사의 준비의 하나로 대단히 중요하다.
고대의 많은 민족들이 하늘[上天]을 숭배하고, 제천(祭天)의식을 실시했다. 고구려의 개국시조는

 ‘천자[天之子]’로 되어 있다. 자연에 대한 제사[祭天]는 국가 대사의 하나이다. 고구려의 제천활동은 가을에 거행했다. 고구려는 10월 제천(十月祭天)을 거행했다. 그 명칭을 동맹(東盟)이라고 불렀다. 이 제사에 참석할 때 의복은 모두 비단 옷을 입고, 금·은으로 많은 장식을 했다.

고대의 제천(祭天)활동은 농업과 직접 연결되어 있었다. 중국 동북지구의 기후 변화가 심각해 자연재해가 비교적 많기 때문에 제천활동은 이러한 상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제천활동의 규모는 대단히 컸다. 전국 각지의 모든 관리들이 수도(중심도시)로 모여서 왕이 주관하는 제천활동에 참가해 의식을 같이 실시하면서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고, 일년 중에 비·바람의 순조로움과 오곡(五穀)의 풍요로움을 기원했다.

고구려 제천의식에 제공된 음식은 돼지고기[猪]였으며, 이 제사음식을 ‘교돈(郊豚)’이라고 불렀다. 고구려에서는 교돈의 사육을 대단히 중시해 전문 관리인을 두어 사육시켰다.

고구려에서는 군사활동에 있어서도 제천(祭天)의 방법을 채택했다. 「위략(魏略)」책에 따르면 “고구려가 군사적 제천을 지낼 때, 돼지를 죽여 길흉(吉凶)을 점쳐서 결정했는데 반드시 두 개의 발굽(蹄)이 합당해야 행운(吉)이 온다고 보았다(高句麗 有軍事祭天, 殺牛觀蹄 以占吉凶, 蹄合者吉).” “후한서·부여전(后漢書·扶餘傳)에 따르면 부여에서도 군사행동 때 제천을 지냈으며, 소를 죽여 두 개의 발굽이 일치할 때 군사행동 때 순리적이며 승리가 오고, 만약 두 개의 발굽이 일치하지 않을 때는 흉조(凶兆)가 오는 것으로 보았다.

문헌기록상에 고구려에서 ‘별들[靈星]’에게도 제사를 지내는 습관이 있었다. 영성(靈星)은 즉, ‘천전성(天田星)’이다. ‘성경(星經)’에 ‘천전구성, 주기내 전묘지직(天田九星, 主畿內 田苗之職)’이라는 내용이다. 이 뜻은 즉, 영성(靈星)은 농업을 주관하는 농업신[農業之神]이다.

‘사직(社稷)’은 임금이 제사지내는 신(神)이다. ‘토지신(土地神)’은 때로 ‘후토(后土)’라고도 부르는데 그 뜻은 곧 ‘사(社)’를 나타낸다. 또한 ‘직(稷)’은 ‘곡신(穀神)’이다. 따라서 사직(社稷)은 즉, 신(神)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길림 집안시 동태자(東台子)유적에서 제사지내는 ‘사직(社稷)’의 유적이 발견되었다. 이 유적의 규모가 대단히 크다. 따라서 농경지의 제사 장소가 아니라 국왕의 국사(國社) 장소로 판명되었다. 이때의 국왕은 고국양왕(故國壤王)의 명령으로 준비된 것으로 보고 있다. 즉, 고구려 최고 통치자들은 토신(土神)과 곡신(穀神)을 대단히 중시한 예가 되고 있다.

「삼국지·고구려전(三國志·高句麗傳)」의 기록에 따르면 그 나라 동쪽에 큰 동굴[大穴]이 있었으며 그 명칭은 ‘수혈(隧穴)’로 되어 있다. 시월(十月) 나라 행사로 시행되는 것으로 ‘수신(隧神)’을 환영하는 나라 제사로서 나무로 만들어진 것을 목수어신좌(木隧於神坐) 즉, 신의 좌석으로 설치했다.

이 수신은 어느 방향의 신(神)인지 학설이 분분하다. 다만 일부 학자는 ‘여신(女神)’으로서 인구수를 증가시키는 주관적인 신으로 보고 있다. 고구려는 원시여성숭배사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이 영향으로 주몽(朱蒙)의 모친 유화(柳花)는 전설 속에 ‘노조모(老祖母)’로 고대 신화속의 ‘모신(母神)’으로 보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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