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성도 인천시 아동복지협회장

 얼마 전 매스컴에 우리나라와 외국 선진국의 중산층에 대한 기준이 기사화되었다. 한국의 중산층 기준 (직장인 대상 설문 결과 )은 부채 없이 아파트 30평 이상 소유하고, 월급여 500만 원 이상, 자동차는 2천CC급 중형차 소유, 예금액 잔고 1억 원 이상 보유, 그리고 해외여행은 1년에 몇 차례 다닐 것이었다.

프랑스의 중산층 기준(퐁피두 대통령이 Qualite de vie ‘삶의 질’에서 정한 프랑스 중산층의 기준)은 외국어를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고,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어야 하며,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어야 하고, 남들과는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어야 하며, 그리고 ‘공분’에 의연히 참여할 수 있고, 약자를 도우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할 것이었다.

영국의 중산층 기준(옥스퍼드 대학에서 제시한 중산층 기준)은 페어플레이를 할 것,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질 것,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말 것,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할 것, 불의·불평·불법에 의연히 대처할 것이었다.

미국의 중산층 기준(공립학교에서 가르치는 중산층의 기준)은 자신의 주장에 떳떳하고, 사회적인 약자를 도와야 하며, 부정과 불법에 저항하는 것, 그 외 테이블 위에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비평지가 놓여있을 것이었다.

우리나라와 외국의 중산층 기준의 다른 점은 우리나라는 기준이 전부 물질에 관련된 것이라는 점과 외국의 경우는 공통적으로 봉사활동이나 약자에 대한 보호와 도움이 들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물질만능주의라 뭐든 물질과 관련된 것으로 평가하는구나 라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중요한 점은 외국의 중산층의 기준에서 배울 점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도움이 보편적 인식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대다수 국민들의 책임과 의무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이러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도움이 보편적 인식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개인의 책임과 의무라는 인식과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약자에는 우리가 흔히 이용하는 지하철을 타 보면 알 수 있다. 바로 노약자 보호석이다. 어르신·장애인·아동·임산부 등을 위한 자리이다.
우리나라도 요즘은 어르신과 장애인에 대한 관심과 제도가 많이 향상되었고 인식도 보편화 되었다. 국가 예산도 많이 늘었다. 그런데 유독 사회적 약자 중에 가장 배려와 도움을 받아야 할 아동과 관련한 제도나 예산, 사회적 인식은 제자리걸음이다.

왜 그럴까?
아동 포르노가 거리낌 없이 난무하고 성폭력에 살해까지 당하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우리나라의 미래이며 꿈이라고 늘 얘기는 하는데 아동들을 미래의 주역으로 그들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제도와 예산은 과연 얼마나 되는지, 사회적으로 얼마나 관심을 갖고 아동들을 위한 책임과 의무감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 묻고 싶다.

더군다나 부모의 보호조차 받지 못해 국가에 생존권을 의탁하는 아동생활시설 아동들은 한 끼 1천420원 짜리 식사에 일 년 의류비(속옷 포함)가 1인당 15만5천592원으로 옷 한 벌 값도 안 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사회적 배려와 보호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무책임하고 무관심하다. 그래서 아직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아닌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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