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도국 인천시 계양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된 지 만 12년이 되었다. 국민의 생존권 보장이 국가의 의무이며 나이나 근로능력 유무와 무관하게 최저생계비 이하인 모든 국민에게 수급권을 인정한 국민적 권리임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부양의무자, 재산상태의 고려 등 엄격한 수급권자 선정기준으로 인해 여전히 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는 빈곤층의 규모는 410만 명으로 전 인구의 약 8.4%나 되고 있다. 특히 본인의 소득·재산만을 기준으로 수급 선정여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부양능력이 없거나 부양행위를 하지 않는 부양의무자의 존재 때문에 수급에서 제외되는 빈곤층이 103만 명이라고 한다. 이들은 가족에게 버림받고 국가에게서 또다시 버림받아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
정부와 시민단체는 부양의무자제 폐지를 놓고 몇해째 계속 대립을 하고 있다. 이들의 대립속에 국민들은 한 명 두 명씩 연이어 죽어가고 있다. 지난 8월에도 경남 거제시청 화단에서 제초제를 마시고 78세 노인 이모 씨가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제외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혼한 지 10년이 넘는 동안 만나본 적도 없는 전 부인이 제 딸의 부양의무자로 되어 있는데 전 부인이 소득이 생겼다고 해서, 89살의 노인이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딸과 생활하던 중 따로 살며 가족 부양을 못하던 아들이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근무해 수입이 생겼다고 해서, 연락이 단절되었던 부양의무자와 통화 한 번 했다고 해서 등 여러 사유로 수급자 선정에서 탈락되고 있다.
부양의무자의 범위는 수급권자의 1촌(부모·장인·장모·아들·딸·며느리·사위)으로 되어 있다. 자녀가 5명이라면 모두가 부양의무자의 범주에 속한다. 장남이든 장녀라고 해서 부양 1순위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동일선상에서의 부양의무자가 된다.
부양의무제와 관련해 대법원은 국민 개개인의 권리를 존중해 주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재판부는 “어떤 이유로든 부양의무자가 부양을 기피하거나 거부하는 경우 이러한 사실이 인정되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수급자가 되기 위한 요건인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을 받을 수 없는 경우’를 충족한다”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는 최근 부양의무자제 폐지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 이유는 독일·일본 등에서도 시행하고 있고, 민법상 규정이 되어 있으며, 폐지했을 때 가족 간의 유대감 및 부양의식에 대한 논란 등 가족의 부양기피 촉발제가 될 것이라는 이유다. 그동안 부양의무제는 유교적 가치관의 영향으로 인해 가족의 문제는 가족이 해결해야 한다는 국민적 정서를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또한, 정부 예산의 한정으로 인해 부양의무제를 폐지했을 때 국가 예산의 단순 추계를 해도 5조7천억 원 이상이 든다고 한다. 이 때문에 올해보다 내년에 부양의무에 따른 소득기준을 완화해 올해보다 3만여 명이 더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소득기준완화를 확대한다고 한다.

정부의 입장도 일면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현실적이지 못한 부양의무제로 인해 가족이나 국가로부터 부양을 받지 못하는 노인과 장애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내몰리고 있다. 2013년 정부예산 342조5천억 원 중 복지예산이 100조 원에 다다른 97조1천억 원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5조7천억 원 없어 100만 명의 빈곤층이 또다시 이리저리 떠넘겨질 것이 예상되고 있다. 새해가 되지 않아도 이들의 삶의 질을 떠나 생존의 위협은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 명약관화할 것이다.
내년도 살림살이를 정부는 ‘경제활력’과 ‘민생안정’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 민생안정보다 앞선 것이 국민의 생존권이다. 다시 한 번 정부와 정치권의 심도깊은 논의를 통해 국민 한사람 한사람을 책임있게 챙기고 돌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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