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초 연휴를 끼고 1박 2일 서울나들이를 다녀왔다. 수시로 서울을 방문하지만 일 때문에 가는 곳이라 정해진 장소에서 행사나 모임이 끝나면 돌아오기 바빴다. 외국인들이 감탄한다는 서울의 아름다움을 느껴 볼 여유도 없이 늘 허겁지겁이었다.

웅장은 위압감을 동반하는데 서울의 자연은 친화적이다. 한강도, 북악도, 고궁도, 오래된 골목길도 사람들에게 놀러와 손짓하며 부르는 것 같다. 광화문 근처 숙소에서 내려다보이는 거리는 낮엔 분주하고 밤은 부드럽다. 홍콩의 ‘심포니 오브 라이츠’처럼 화려한 레이저 쇼는 없었지만 건물의 조명과 가로등이 선별한 분위기는 차 한 잔 마시면서 내려다보기에 좋았다.
덕수궁 미술관에서 본 설치미술작품은 권위를 잃은 황제의 비망록이라 가슴에 싸늘한 전율이 오고 큐레이터의 설명에 급 공감이 와 따뜻한 눈으로 황제를 감싸주고 싶어졌다. 돌담길 풍경은 가을 정서에 맞게 고즈넉하고 함께 걸어서 이별한 연인의 추억 하나 가지지 못한 나는 저무는 가을 햇살에 긴 그림자를 만들었다. 2층 창가 자리에서 수문장 교대식 행사를 보면서 토속음식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그 풍경 속에 나를 내려놓고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이른 아침, 휴일의 서울 도심은 한적했다. 청계천 길을 따라 산책을 했다. 고층빌딩과 찻집과 인공물길이 갈등 없이 어우러져 평화로웠다. 부쩍 눈에 띄게 많아진 외국인 관광객을 보면서 ‘아, 서울이 국제도시구나’하고 실감했다. 지도를 들고 길을 묻는 외국인에게 친절한 딸애가 기특하고 모처럼 함께한 딸과의 나들이라 내 마음도 가을하늘만큼 청정이다.

차를 타고 쭉 들어서 체육시설이 있는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근처 찻집과 밥집에서 두세 시간 보내다 온 것이 전부인 삼청동 길을 길었다. 많이 붐비고 상업화 되어 옛 정취는 덜해도 여전히 눈을 열어주고 마음에 달콤한 위안을 주는 동네다. 골목 탐사를 했다. 좁은 길에서 예술적인 간판을 만나고 계단을 오르면 기와집이 있고 늙은 감나무에 가을이 가득하다.
사람을 만났다. 정중한 시간이 고문이었을, 눈에 장난기 가득한 주근깨 꼬마가 결국 음식그릇을 엎으면서 우리 테이블 위로 넘어졌다. 쏟아진 음식이 내 옷에 튀어 얼룩을 만들고 부모는 단호한 목소리로 아이를 훈계했다. 시무룩해진 아이가 귀여운 걸 보니 내 나이가 묵었구나 싶다. 괜찮다고 했으나 타인에 대한 결례에 결벽증을 가진 파란 눈의 부모는 음식 값을 지불하겠다고 똑부러진 계산을 했다. 민망해져 한국 전통차 대접을 하겠다고 제의를 했다.
연휴기간에 한국여행을 왔다는 젊은 부부는 홍콩에서 금융회사에 다니고 있는 미국인이었다. 한국친구가 있는데 집에 초대받아 가면 조부모와 함께 사는 어른공경문화가 너무 좋아보였다며 한마디로 설명 불가한 한국인의 ‘정’에 대한 얘기를 했다. 똑똑하고 이재에 밝은 젊은 부부가 사람 사이에 맺고 끊음에 우유부단하고 효율보다는 이고지고 거두며 때로 악다구니를 쳐도, 그게 정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게 신기하고 대견스러웠다. 아주 가끔은 이리 살아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며 웃는다. 단,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는 범위라고 단서조항을 달았다. 
서울을 형성하고 있는 수백 가지도 더 될 요소들 중에는 분명 마음을 끄는 도드라진 부분이 있다. 사람마다 느낌도 관점도 다를 것이기에 일률적인 잣대를 댈 수는 없지만 IT강국답게 대량정보를 신속한 검색으로 뽑아내는 효율성을 1등으로 친다. 전면에 내세우는 빠름은 우리가 가진 정신의 가치에 무게를 실어주지 못한다.

사람과의 관계에는 만나서 나누는 정서적 공감이 큰 역할을 한다고 본다. 눈에 익으면 친밀감이 생기고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 서서히 스며들어 중요한 존재가 되어 간다. 자잘하게 나눈 정이 어느 순간 그 의미를 알게 만들어 기계적 차가움과 날선 효율성을 보완해 줄 힐링의 시간이 그리울 때, 서울을 방문한다면 어떨까. 따뜻해지는 상상이다.
결국 세상의 삶은 사람이 주인이다. 서울을 여행하고 싶은 이유가 사람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빠름과 느림이 공존하는 서울. 사람도 풍경도 서로 간에 곱게 새겨지길 바라며 1박 2일의 일정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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