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잔치·결혼식·문상. 순서대로 신년 첫 주말이 바빴다. 사람이 나고 자라 생을 마감할 때까지 중요한 통과의례를 둘러본 셈이다. 낮에는 축하자리에 참석해 축복의 덕담을 나누고 밤에는 장례식장을 찾았다. 돌잔치·결혼식의 행복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살아생전 고인의 분방함으로 어지러운 뒷감당을 떠안아 힘들어하는 상주를 위로했다.
사람과의 관계에는 원근법이 무시된다. 누구나 이런저런 인연으로 사람을 만나며 살지만 매번 울림이 크게 오지는 않는다. 끌어안거나 사랑할 수 없거나 위안을 주거나 괴로움을 받거나 그중의 하나는 필수이면서 때로는 복잡하게 여러 가지 감정이 엉키기도 한다. 잦은 만남이라고 다 친숙하고 즐거운 것도 아니고 드문드문 만나더라도 여운이 길게 가는 경험을 누구나 해 봤을 것이다.

돌잔치와 문상은 바쁜 일이 있어도 꼭 참석하고 싶은 자리였고, 결혼식은 좀 그랬다. 청첩장을 받고 나한테까지? 의아했는데 문자로 연락이 또 왔다. 그래, 좋은 일인데 축하해 주자. 마음을 정하고 나니 홀가분해진다. 그 덕분에 인천과 서울과 지방으로 바쁜 주말을 보냈다.

첫돌이나 결혼은 생의 통과의례에 큰 의미를 가진다. 태어나 1년쯤 되면 땅에 발을 딛고 보행을 시작한다. 내 의지로 방향을 잡고 어설픈 걸음을 떼기 시작하는 단계다. 직립 보행은 쉽게 적응이 안 된다. 서서 보는 세상은 경이롭지만 노력이 따라야 한다. 수없이 넘어져 수없이 일어서고 그러면서 걸음이 안정되면 달려 나갈 수 있는 다리 힘이 생긴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에게 세상은 격려와 칭찬 일색이다. 안쓰러워하고 대견해 하며 사랑스런 눈길로 감싼다.

결혼은 의무와 책임을 져야하는 새 역사의 출발이다. 독자적 성인으로 인격이 되어 가정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냥 자상한 눈길로 봐주지 않는다. 나름대로 각오는 했지만 서툴고 미숙해 시행착오를 거친다. 넘어지는 게 두렵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걸음마 배우기처럼 의심 없는 재도전에 제동이 걸린다. 탓을 하고 몰라줘 야속하고 원망이 쌓인다. 날카로운 말에 베이고 벼른 날을 휘둘러 배우자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 걸음을 떼기 시작할 때와는 비교 불가한 압박이 온다. 혼자만의 문제는 쉬울 수 있는데 관계맺음은 변수도 많고 경우의 수도 부지기다. 사회적 압박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삶의 규범이기도 한지라 쉽게 틀을 깰 수 없어 어렵다.

새해가 되면 누구나 새로운 각오를 한다. 지난했던 작년 한 해가 아쉬워 다부진 결심을 하고 계획을 세운다. 작심삼일이 단골 메뉴였던 과거의 신년 각오를 올해는 꼭 청산하리라 눈 부릅뜨고 주먹을 쥐어본다. 그러자면 작년과 다른 관리가 필요하겠다.
장기적으로 지속적으로 습관을 들여야 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어 시급한 것보다 중요한 일을 먼저 하는 습관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순위에 중요한 것이 먼저 자리 잡아야 큰 틀로 보면 허물어지지 않을 것 같아서다. 실패를 곰곰 살펴본 결론이다. 또 반드시 기록하는 습관도 필수라는 생각이 든다. 기억의 한계는 어쩔 수 없는 뇌의 용량이라 계획을 이어가는 데 연결이 될 수 있게 메모를 해두면 연관된 사항을 바로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시행착오도 줄이고 계획을 끌고 가는 데 헤매지 않아 심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힘이 덜 들 것 같아서다.
욕심 부려 너무 빡빡한 일정은 지치게 만들어 포기를 부를 것 같으니 좀 느긋하게 여유를 주면서 내 삶에서 소중한 것을 앞자리에 놓아보겠다. 사람 관계도 눈에 보이는 물리적 거리에 속지 않도록 혜안을 가지는 연습 항목도 이 중에 들어 있다. 따뜻한 인연이 만들어지도록 애써 볼 참이다.
걸음마의 첫 시작은 온통 칭찬이고 결혼은 축복인 동시에 책임도 함께 준다. 한 생을 끝내는 소멸은 평가가 더해져 냉정하다. 나 자신과의 관계, 세상과의 관계에 무엇을 멀리, 무엇을 가까이 정해야 좋을지 만만하지 않다.  신년의 첫 주말을 시작의 축복으로 보냈으니 마무리 또한 깔끔하게 끝났으면 좋겠다. 죽음 또한 윤회의 시작이란 말이 있다. 남겨진 이들에게 덤터기 씌우는 일은 없어야 깔끔한 생을 살았다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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