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기범 아나운서

2013년 새해를 맞아 각계각층의 여러 인사들과 방송에서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신년을 맞을 때마다 우리의 마음과 각오를 되새기는 일, 꼭 필요합니다. 제가 담당하고 있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어느 분을 인터뷰하면서 덕담을 해 달라고 요청했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2013년 계사년 새해에는 더욱 더 ‘궂은’ 마음을 가지고 우리의 미래를 힘차게 개척해야겠습니다. 그리고….(후략)”

여러분, 뭔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새해를 맞아 ‘궂은’ 마음을 가지라니요?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힘차게 시작하려고 하는데 ‘언짢고 싫은’ 마음으로 미래를 개척하라고요? 본래는 ‘굳은’ 마음이라고 표현하고 싶었겠지만 구개음화를 잘못 적용해 ‘궂은’으로 들렸으리라 생각됩니다.

원고 상에는 혹은 마음으로는 ‘굳은’이라는 단어를 생각했지만 발음은 본의 아니게 [구즌]으로 하게 된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궂다 [굳따]
①(날씨가) 비가 오거나 눈이 내려 좋지 못하다.  
②(어떤 일이) 언짢고 싫다.

◐굳다 [-따]
①(무른 물질이) 단단하게 되다.
②(근육이나 뼈마디가) 뻣뻣하게 되다.
③(태세·태도 등이) 튼튼하고 단단하다.

잘 아시겠지만 구개음화는 ‘ㄷ’과 ‘ㅌ’이 ‘ㅣ’와 ‘히’를 만나 ‘ㅈ’과 ‘ㅊ’으로 바뀌는 현상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미닫이’가 [미다지]로, ‘같이’가 [가치]로 발음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의 ‘굳은’은 ‘ㅣ’나 ‘히’를 만난 것이 아니므로 그대로 [구든]이라고 발음하는 것이 옳습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런 내용을 말씀드리면 머리 아파 하시는 분들도 있겠습니다만 스피치의 기본 목적이 ‘의사전달’이라고 생각한다면 제대로 뜻을 전하기 위해 이렇게 발음부터 고쳐나가는 것이 필수요소일 것입니다.

구개음화를 잘못 적용하는 경우는 일상생활에서 생각보다 참 많습니다. 1990년대 중반 유명가수의 노래 중에 ‘이 밤의 끝을 잡고’라는 곡이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곡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를 부른 가수는 ‘이 밤의 끝을 잡고’라는 가사를 ‘이 밤의 [끄츨] 잡고’로 발음하더군요. 상당히 멋진 외모와 창법으로 대중의 인기를 끌었던 가수였지만 이 부분만큼은 옥에 티였습니다.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끝을’은 구개음화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끄틀]로 연음시켜 발음하는 것이 옳습니다. 연음을 잘못 적용한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랜만이다.”
“응. 오랜만이군. 잘 지냈어?”
“실은 내가 [비시] 좀 많아서 걱정이야.”
“그래? 대출이 얼마나 되는데 그러나?”

위의 대화에서 잘못된 발음을 쉽게 찾으실 수 있겠지요? 네, 맞습니다. ‘빚이 많아서 걱정이야’에서 ‘빚이’는 [비시]가 아니라 [비지]라고 발음해야 합니다. [비시]라고 하면 ‘(머리 빗는)빗이 많아서 걱정’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언젠가 이 시간을 통해 말씀드린 것처럼 스피치에서 언어적 요소 중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발음입니다. 정확한 발음이 전달력을 높입니다.

오늘의 과제입니다. 다음을 제대로 발음해 보시기 바랍니다. ‘밭에는’ ‘묻히다’ ‘콩팥이’ ‘빛이’ ‘논밭을’.
   (※ 원기범 아나운서의 ‘세·바·스·찬’은 ‘세상을 바꾸는 스피치 찬스’입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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