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제 인천귤현초교 교장

역대 최대 국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탄생한 새 정부가 출범을 위한 내각을 구성하는 데 두 달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었다.

정권이 바뀌어 새로운 내각을 구성할 때는 물론, 장관을 비롯한 고위직 인사가 있을 때마다 이루어지는 국회 청문회 내용의 핵심은 담당할 업무에 대한 전문성이나 비전보다는 해당 인사의 삶의 흔적과 태도이다.

특히 자식을 위한다는 명분하에 이루어진 위장전입이나 병역기피, 재산증식을 위한 부동산 투기나 부적절한 금품수수, 전관예우라는 미명하에 이루어지는 각종 비리 등은 적격 여부를 판단하는 단골메뉴처럼 되고 있다.

사회가 급변하고 수요자의 요구가 다양해지고 있지만, 높은 도덕성과 청렴은 공직자들을 향한 변함없는 국민들의 기대이며 요구이다.

조선시대의 천재이며 대학자로 500여 권에 달하는 저서를 남긴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송나라 학자 육구연의 「상산록(象山錄)」을 인용해 공직자의 청렴을 다음과 같이 세 등급으로 구분하고 있다.

최상의 등급은 봉급 외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먹고 남는 것이 있더라도 가지고 돌아가지 않으며,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날에는 한 필의 말로 아무것도 지닌 것 없이 떠나는 것이다.

중간 등급은 봉급 외에 명분이 바른 것은 먹고 바르지 않은 것은 먹지 않으며, 먹고 남는 것이 있으면 집으로 보내는 것이다.

최하 등급은 이미 규례가 된 것은 명분이 바르지 않더라도 먹되 아직 규례가 되지 않은 것은 자신이 먼저 시작하지 않으며, 향임(鄕任 : 조선시대 향청의 직원)의 자리를 팔지 않고, 재감(災減 : 재해를 입은 논밭에 대해 줄여주는 세금)을 훔쳐 먹거나 곡식을 농간하지 않고, 송사(訟事 : 분쟁에 관한 판결)와 옥사(獄事 : 범죄를 다스림)를 돈을 받고 처리하지 않으며, 세금을 더 부과해 남는 것을 착복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청렴문화와 전통을 가진 우리 국민들이 청탁과 비리, 투기와 탈세, 부당한 수임과 금품수수, 각종 부적절한 내부거래나 이면합의 등 사회 지도층의 비리에 실망과 분노를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 것이다.

아무리 생활이 힘들고 의식주 해결마저 어려운 상황에서도 도덕적 가치와 신념을 지키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며 지켰던 것이 우리 민족이요, 전통적인 선비정신이었다.

그런데 일본 제국주의의 비열한 침략과 악랄한 문화말살 정책으로 우리의 고고한 선비정신은 유린되고 역사와 전통은 왜곡과 파괴의 수난을 당하고 말았다.

더구나 그로 인한 상처가 아물 겨를도 없이 급속한 서구문명과 자본주의 유입의 영향으로 우리 민족은 극심한 변화와 가치관의 혼란을 겪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어려움과 혼란 속에서도 우리 민족의 청렴에 대한 강렬한 의식은 보이지 않는 지하수처럼 면면히 흘러 오늘의 사회발전과 정의구현의 원천이 되고 있는 것이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연이은 고위공직자 낙마 원인과 각종 사건 사고의 대부분이 부족한 청렴의식에서 기인하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으로 대두된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소주의도 우리 사회 지도층의 청렴에 대한 인식 부족과 방만한 생활 태도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으리라.

어디 그뿐이랴! 최근에는 사회의 마지막 보루라는 교육계마저도 국민들의 청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어 나 또한 고개를 들기 어려운 실정이다.

목민심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봉급만으로 살고, 설령 남는 것이 있더라도 가져가지 말아야 하며, 임기가 끝날 때는 말 한 필에 몸을 싣고 빈손으로 떠나야 한다’는 청렴의 최상 수준은 제쳐 두더라도, 이미 규례가 된 것은 명분이 바르지 않더라도 먹되 아직 규례가 되지 않은 것은 자신이 먼저 시작하지 않으며, 자리를 팔지 않고, 세금을 훔치거나 돈을 받고 송사와 옥사를 처리하지 않는 최하 등급의 청렴마저 찾아보기 힘든 사회가 된 것 같아 공직자의 한 사람으로 부끄럽고 안타까운 심정이다.

청렴은 공직자를 비롯한 사회 지도층에 대한 온 국민의 기대이며 시대적 요구이다.

나아가 사회발전의 원동력이며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다.

새 정부에 대한 기대와 요구에 앞서 우리 사회 각계각층 구성원 모두가 냉철한 자성을 바탕으로 끊임없는 자정을 통한 상호신뢰 회복이 절실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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