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회에 다녀온 아내가 남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 동창회에 오랜만에 나갔더니 그동안 못 봤던 친구들을 만나서 참 좋았어요. 하지만 속상하기도 했어요.

 글쎄 학교 다닐 때는 나보다 공부도 못하고 예쁘지도 않았던 친구들이 고급 승용차 끌고 비싼 옷 입고 온 거 있죠. 그리고 보톡스를 맞았는지 팽팽한 얼굴로 나타났지 뭐에요.

기분이 참 묘하더라고요. 샘나서 혼났어요.” 아내의 이야기를 들은 남편의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그러게 내가 뭐라고 했어요? 쓸데없이 동창회 나가지 말라고 그랬잖아요.

 다들 자기 자랑하러 나오는 거에요. 그렇게 속상해 하려거든 다음부터는 동창회에 절대 나가지 말아요.”

여러분은 이 대화를 어떻게 보십니까? 남편의 대답을 들은 아내는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아내가 남편에게서 듣고 싶었던 말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아유 속상했겠네요.

비싼 옷 입지 않아도, 얼굴에 손 안대도 내게는 당신이 제일 예뻐요.” 뭐 이 정도의 말이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남편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을 것입니다. 아내가 안 가도 되는 자리에 굳이 다녀와서 속상해 하는 것을 보니 뭔가 해결책을 제시하고 싶었던 것이겠지요.

사실 남녀 간의 대화가 서로 다르게 전개되기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고 그로 인해 갈등으로 번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오죽하면 남자는 화성에서 왔고 여성은 금성에서 왔다고 하겠습니까. 

그렇다면 이런 남성과 여성의 대화는 왜 서로 다른 것일까요? 데보라 태넌이라는 미국의 언어학자는 일반적으로 남성들은 독립을 유지하기 원하고, 여성들은 유대관계를 유지하기 원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더군요.

즉, 남편들은 좀 더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하고, 아내들은 더 가깝게 다가가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한다는 거지요.

인류학자들에 따르면 이런 차이가 남성과 여성이 오랫동안 수행해 오던 역할의 차이 때문이라고 합니다. 남성은 먹이를 찾아다니는 먹이추적자의 역할을 해왔고, 여성은 둥지를 지키는 둥지수호자의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먹이추적자들의 대화는 주로 어떤 것일까요? “멧돼지가 도망간다. 빨리 움직여.” “저쪽으로 가면 먹잇감이 있다. 산을 넘어야 한다.” 이렇게 정보 위주의 대화였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먹이추적자에게 필요한 대화는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거처를 지키면서 돌봐야 하는 여성들에게 있어서 의미있는 대화는 남아있는 가족들, 그리고 이웃들과 함께 유대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여성들에게 대화의 목적은 친교 유지에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남성과 여성은 대화를 하는 목적 자체가 다르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 사이에 대화를 하면서 이런 차이를 고려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보통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아내는 무슨 이야기를 해주기를 원합니다. 친밀한 교제를 원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남편은 신문을 보거나, TV만 볼 뿐 아무 말도 안 합니다. 그럼 어떤 대화가 오고갈까요?

아내 : 여보, 당신은 집에 오면 TV밖에 보이는 게 없어요? 나랑은 그렇게 할 말이 없어요?

남편 : 아니, 할 말이 있는 사람이 말을 해야지, 왜 말을 안 하냐고 시비를 걸면 되겠어요?

이 댁 대화가 심상치 않지요? 하지만 이것은 남편과 아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단지 할 말에 대한 남녀의 생각이 다를 뿐이지요. 남편이 생각하는 할 말은 정보성이 있는 말입니다.

아내가 생각하는 할 말은 친교유지를 위한 말이지요. 그러니까 집에 돌아와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남편이 아내에게 관심이 없거나, 집안일에 흥미가 없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정보를 중심으로 말하는 언어 습관 때문에 말을 잘 안 하는 것이지요.

반면에 아내는 하루종일 밖에 있다가 들어온 남편과 유대관계를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이때 할 말은 특별한 정보성을 가진 말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내용이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냥 남편이 어떤 말이라도 함께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지요. 다시 한 번 정리하겠습니다.

대화의 목적이 남성은 ‘정보전달’인 반면 여성은 ‘친교유지’입니다. 이렇게 차이점만이라도 제대로 인식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부부 사이의 대화를 좀 더 효율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과제입니다. 배우자와의 대화를 곰곰이 돌이켜보고 대화의 목적이 달라서 오해가 생겼던 부분은 없었는지 생각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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