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사이의 ‘대화’는 ‘대놓고 화내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워야 하는 사이임에도 대화에는 그만큼 어려운 점도 있다는 뜻이겠지요.

우리 가족 관계를 나타내는 촌수는 거리를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자간은 1촌, 자녀 간은 2촌, 이런 식으로 숫자가 많아질수록 혈연에 의한 거리도 멀어지지요. 그런데 부부 사이는 무촌입니다.

그렇다면 무촌의 거리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부부도 무촌이고, 남도 무촌이니까 무촌의 거리가 얼마나 될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부부 사이를 우리말로는 ‘알쏭달쏭’하고 불어로 표현하면 ‘아리송’한 관계, 그리고 일본어로 표현하면 ‘아리까리’한 사이라고 하는 게 아닐까요? 정말 한마디로 표현하기 참 어려운 관계라고 봐야할 것입니다.

이 시간을 통해 부부 사이의 올바른 소통법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만 대화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가 되는 것은 바로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입니다. 그리고 지난 시간에 살펴본 대로 남성과 여성은 대화의 목적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반드시 인식해야 합니다.

남성은 ‘정보전달’이 대화의 목적이고, 여성은 ‘친교유지’입니다. 대화를 나누면서 대화의 목적을 파악하는 것은 상대방하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상대방이 독립을 원하는지, 아니면 유대관계를 원하는지를 파악하는 것, 그리고 정보중심의 대화를 원하는지, 친교중심의 대화를 원하는지를 파악하고 거기에 맞추어 대화를 나누는 것이 필요합니다.

남녀 간 대화에는 또 다른 차이점이 있습니다. 분량의 차이입니다. 어느 분이 그러시더군요. 부인이 친구와 2시간 동안 통화를 하고 나서 전화를 끊을 때 “얘, 우리 중요한 이야기는 나중에 만나서 하자.”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쓸데없는 통화를 왜 그렇게 오래 하느냐고 아내에게 핀잔을 주었다가 결국 다투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여성들의 대화는 정보전달이 아니라 친교유지에 그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불필요한 다툼은 없었겠지요. 그리고 통계적으로 남성은 하루에 2천~4천 단어를 사용하고 여성은 4천~6천 단어 이상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남편들은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고 귀가하면 그날 사용할 단어 대부분을 썼기 때문에 말없이 조용히 쉬고 싶은 것이고 아내들은 아직 쓸 단어가 충분히 남아 있는 데다 남편과의 유대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이런 저런 대화를 시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화학’의 권위자이자 상명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인 구현정 박사의 저서 ‘대화’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어느 남편의 말입니다. “내가 좀 생각할 게 많아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거든요. 그랬더니 아내가 계속해서 ‘무슨 일 있었어요?’ ‘왜 그래요?’하고 묻는 거예요. 아무 일도 아니라고 말해도 또 와서 당신 얼굴에 무슨 일이 있었다고 써 있는데 왜 말을 안 하느냐고 바가지를 긁기 시작하는 거예요. 난 그냥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혼자 찾고 있었던 것뿐인데, 이러면 아주 화가 나요.”

반면에 그 아내는 이렇게 말합니다. “남편이 집에 들어와 아무 말도 안 하고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 있는 거예요. 분명히 무슨 걱정거리가 있는 것 같은데, 물어보니까 아무 일도 없다고만 하는 거예요. 아무리 봐도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아내로서 어떻게 모르는 척하고 가만히 있겠어요? 무슨 일이 있으면 같이 이야기도 하고, 위로하고 그래야 부부 아니겠어요? 그래서 또 같이 이야기 좀 하자고 했더니, 절더러 바가지를 긁는다고 화를 내는 거 있지요?  자긴 혼자 있을 자유도 없냐고요. 정말 이해가 안 가요.”]

어떻습니까? 이런 상황 아마 한두 번 쯤은 경험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위의 예에서 남편은 아내와의 대화를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독립을 유지하면서 생각을 더 할 부분이 있었고 따라서 전달할 정보가 없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은 것 뿐이고 아내는 ‘친교유지’를 위해 남편의 고민상담도 해줄 겸 대화를 하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결국은 이 대화에서 잘못한 사람은 없습니다. 상대방의 화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야기된 오해입니다.
부부 사이에 대화할 때 서로의 관점을 바꾸어 생각해보는 패러다임의 전환은 진정한 소통을 위해 꼭 필요한 일입니다. 오늘의 과제입니다. 남편과 아내의 역할을 바꾸어 대화를 해보기 바랍니다. 서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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