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걸 그룹의 춤을 신나게 춘다. 아이의 무대공연을 보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저 끼 많은 아이가 감당했을 외로움과 상처에 분노가 치민다.

아이의 절박함에 무심했던 시선들 중에 우리는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일 년 반 만에 초등·중등·고등 학교 과정을 마친 영민한 아이다. 쉼터에 와서 밝아지고 꿈이 생긴 아이가 예쁘다.

무방비로 내몰렸던 몸과 마음이 자존과 긍정의 에너지로 채워져 아이는 앞으로 행복한 자화상을 만들어 갈 것이다. 관중의 환호에 수줍어하면서도 은근히 즐기는 배짱이 느껴져 열렬히 박수를 쳤다.

박수 받을 만하구나. 후원 이사라는 거창한 명패가 늘 민망하고 쑥스러웠는데 저 여린 손을 잡아주는 데 작은 힘을 보탤 수 있었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뻐근해진다.

‘후원회 밤’ 행사는 아름다웠다. 전문 예술인을 모셔와 하던 예전의 축하공연보다 올해의 무대공연은 서툴고 미숙해도 울림이 있어 감동이다. 저 아이들이 세상을 마주할 자신감과 나를 소중히 여기는 자존감이 더해져 단단히 야물어져 갈 것이라 믿는다.

신도시 외관 멋진 건물의 가장 위층에 내 사무실이 있다. 외벽 창틀과 한 자쯤 되는 공간을 띄우고 밑에서 꼭대기까지 철제 장식물이 설치되어 있다. 외벽의 유리와 철 구조물 장식이 차가운 도시의 매력을 세련 되게 보여주는 건물이다.

아직 찬바람이 매서운 이른 봄에 까치가 날아왔다. 하필이면 이곳에 둥지를 틀 생각을 했는지 안쓰러운 마음에 자꾸 살펴보게 되었다. 세상 경험 없는 젊은 까치부부가 분명하다.

여러 해 경험이 있는 원숙한 까치였다면 절대 선택할 장소가 아니다. 먹이를 구하기가 싶고 적을 방어하거나 살펴보기 좋은 활엽수 나무 꼭대기에 집을 짓는 것이 까치의 생태적 습성이다.

콘크리트와 유리벽에 철 구조물까지 있는 이곳을 선택해야하는 무슨 절박함이 있었는지 신경이 쓰였다.

까치는 영리해 6살 아이 정도의 지능을 가졌다는데 까칠한 건물 외벽에 둥지를 짓는 이유가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불안한 마음을 내려놓았다.

까치부부는 부지런히 나뭇가지를 물어왔다. 갯벌 매립지에 조성된 신도시는 오래 된 나무가 없다. 어디서 마른 나뭇가지를 구해 왔을까 신기했다.

어느 날 사무실에 와 보니 외벽 유리 창틀과 철 구조물 사이 틈에 마른 나뭇가지가 쌓여 있었다. 얼른 이해가 안 가 살펴보니 누가 까치집을 부순 흔적이다. 땅에 떨어지고 남은 가지들이 얼기설기 창틀에 얹혀 있었다.

건물 관리인이 그랬다 한다. 건물주가 시끄럽고 지저분해진다는 이유는 까치집 철거를 지시해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이다. 까치부부는 며칠을 울면서 집을 새로 지었다.

그러면 또 부수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곳에 큰 현수막이 걸렸다. 까치의 접근을 원천봉쇄한 것이다. 신출내기 까치부부는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바로 앞 도로 중앙 녹지대에 있는 나무에다 둥지를 만들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선지 거의 완성되어가는 둥지를 버리고 떠나 버렸다.

어린 부부까치는 산란의 최적기인 3월까지 둥지 짓는데 힘만 뺐지 알을 낳지 못했다. 어디 안성맞춤인 곳으로 이사갔으리라 믿으며 잘 살기를 바랄 뿐이다.

까치는 76개 지자체에서 상징 새로 뽑을 만큼 우리에게 친숙하고 좋아했던 새인데 사람들 생활을 불편하게 하고 농작물에 피해를 입힌다는 이유로 유해조류 신세로 전략했다.

건물 관리인 아저씨가 성가셔 쫓아냈는데 뭐가 문제냐며 볼멘소리를 했다. 졸지에 별 시답잖은 일까지 걱정하는 할 일 참 없는 아줌마가 되었다.

언제부턴가 세상이 각박해졌다. 사람의 삶에서 두려워해야 할 것들이 깃털만큼 가볍게 치부되어 버젓이 행세를 한다.

 약하면 뿔에 받히고 순진하면 휘둘린다.

금속성이 주는 편리와 속도에 인성이 매몰되어 그런가. 마음과 몸에 심하게 타박상을 입은 아이도 쫓겨난 까치부부도 야만이 승리한 쾌거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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