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수 다문화 가정의 구성원들은 국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불행함을 느낀다고 한다. 정부와 자치단체가 마련한 교육, 지원 등의 정책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현실과도 거리감이 있기 때문이다.

#자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이국며느리
지난 2009년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들어온 횐모(베트남·29·여)씨는 자녀계획을 세울 겨를도 없이 그해 임신을 했고 이듬해 아이를 출산했다.

   
 

아이와 함께 행복한 신혼생활을 꾸려 갈 시기임에도 횐 씨는 자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한국에 오자마자 임신을 했고, 임신 중에도 시부모를 모셔야 했으며 온갖 집안일과 남편 뒷바라지까지 해야 했기 때문이다.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행복감을 찾기 위해 베트남 음식을 선보이며 환심을 사려 해도 시부모와 남편은 비난에 가까운 평가를 쏟아냈다.

돌파구를 찾아나선 횐 씨는 다문화 가정 구성원들을 위한 교육 및 정책 등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식구들 몰래 교육에 참가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베트남 친구들을 만났다가 애와 함께 도망칠 것을 우려한 식구들이 횐 씨의 외출을 극히 싫어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렵게 참가한 교육에서도 아쉬운 점은 많았다. 다문화 가정을 위한 교육이지만 가족구성원 모두가 함께하는 프로그램이 아닌, 언어나 문화 등 결혼이주여성인 횐 씨만을 위한 교육으로 맞춰졌기 때문이다.

횐 씨는 “식구들조차 내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나를 믿지 못하고 있다”며 “다문화 가정 교육은 내게만 필요한 게 아니라 가족구성원의 서로 간 이해와 신뢰를 쌓는 프로그램을 구성해 시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횐 씨가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이 뿐만이 아닌, 이방인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시선과 약육강식의 태도였다.

몰래 다문화 가정을 위한 언어교육에 참가했던 첫날, 길을 몰라 택시를 타고 5㎞가 안 되는 거리에 2만7천 원을 냈던 기억을 떠올리면 횐 씨는 아직도 분하다.

그는 “한국어가 서툴고 잘 모르는 듯 보이거나 백인이 아니면 한국인 상당수는 자신들보다 못한 사람으로 취급하고 뺏어먹으려 달려든다”며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고 체류 외국인이 증가하는 현실에서 한국인의 태도는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길을 찾다가 근처에 있던 청소년에게 물어봤을 때 장난으로 길을 가르쳐줘 가까운 거리임에도 한 시간 이상을 고생한 적도 있어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횐 씨의 현실은 고달프기만 하다.

횐 씨는 “이주여성들이 언어 이해는 부족해도 같은 점이 많고 공통된 마음을 가진 똑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한국인들이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며 “이제 한국도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이해와 함께 ‘한민족’이 아닌 ‘다문화 시대’를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왜 엄마가 내 엄마야?
“우리 애들은 태어나자마자 한국사람이에요. 차별받을 이유가 전혀 없잖아요?”
21살의 나이에 한국행에 올라 이제는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을 둔 론(30·필리핀·여)씨는 이국적인 외모를 가지고 태어난 아들에게 한없이 미안하다. 아들에게는 학교 친구들에게 놀림받는 문제가 끝내 익숙해지지 않을 테지만 이를 해결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2007년 아들이 어린이집을 다녔을 무렵부터 느끼기 시작한 미안함은 아들이 완전히 성장해 부모를 이해해 줄 때까지 이어질 것으로 론 씨는 예상하고 있다.

   
 
당시 아들이 다닌 어린이집에서는 다문화 가정 어린이를 교육해 본 적이 없었는지 무조건 잘해 주려는 듯 신경을 써 줬던 것으로 론 씨는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혜택이 다른 학생들에겐 특혜로, 론 씨에게는 차별로 보여졌다고 설명했다.

론 씨는 “잘해 주려고 했던 것이겠지만 다른 친구들에겐 특혜로 보였을지도 몰라 우리 아이를 더욱 외롭게 만든 것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며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과 똑같은 교육을 받으며 자라난 우리 아이가 특혜든 차별이든 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아이가 집에 돌아와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는 말을 여러 번 했는데, 친구들이 놀리고 때렸기 때문”이라며 “학예회·발표회 등 학부모들이 참석하는 프로그램에서는 성인인 아들 친구의 학부모들마저 아이와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경계해 속상했다”고 말했다.

한국사회가 다문화 가정을 바라보는 인식과 시선이 곱지 못해 아이의 아버지마저 밖에 나가 가족들과 있는 모습을 당당해 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게 론 씨의 분석이다.

론 씨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다문화 가정과 그 자녀들을 바라볼 때 경계하고 있어 그렇지 않은 사람들마저 동참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며 “다문화 가정 구성원들을 위한 교육도 필요하지만 그들이 한국 내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내국인의 교육과 따뜻한 시선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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