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오후가 한가롭다. 줄기차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창가에 서서 빗소리를 들었다.

 키 큰 나무 잎에도 키 작은 화초의 꽃잎에도 똑같은 양의 비가 내리지만 가만히 들어보면 빗소리가 제각각이다. 식물들은 저 많은 양의 빗물을 적당히 필요한 선에서 품고 내뱉고를 알맞게 조절한다.

키가 크든 작든 여러 해를 살든 한해살이풀이든 자연의 섭리를 알고 있다. 과욕이 가져올 재앙을 터득했기에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인내와 절제를 언짢음과 구별할 줄 아는 지혜다.

한바탕 바람이 불어온다. 나뭇가지가 심하게 흔들린다. 여린 풀잎이 바람결 따라 눕는다. 소란이 그치면 다시 정좌를 하고 불평이 없다. 탁탁탁 타닥타닥 타타타.

비를 맞는 소리가 달라도 바람이 사정없이 흔들어도 굵은 뿌리는 굵은 대로 새털 같은 뿌리는 섬약한 대로 땅을 움켜지고 끈질기다. 비오는 창 밖 풍경에 빠져 생각이 길어진다.

빗소리와 전 부치는 소리는 파장이 같다 했나 화음이 비슷하다 했나 아무튼 비가 오면 기름에 지진 전이 땡긴다. 냉장고 야채통을 뒤져 감자·애호박·양파·청량고추를 꺼냈다.

장마 전에 담아둔 배추김치도 꺼냈다. 조금 시들기는 해도 반 단쯤 남은 부추도 있다. 쓸 일이 거의 없어 싱크대 선반 맨 위칸에 넣어둔 대형 믹스기를 꺼내 한꺼번에 갈았다. 씹히는 맛도 있어야겠지. 썰어 말린 표고를 물에 불리고 너무 잘지 않고 다졌다.

지지직 탁탁탁. 전이 익는 소리에 군침이 돈다. 습도 높은 공기는 구수한 냄새를 실어 나른다. 이것저것 야채를 모아 만들어 양이 푸짐하다. 앞집을 부르고 위층 반장 아주머니를 초대했다. 늘 바빠 자주 보지 못하는 이웃이라 오늘 모처럼 판을 벌였다.

여자 셋 모이면 장독이 깨진다 했다. 다행인지 모인 셋 다 수다스러운 아줌마들이 아니라 장독은 멀쩡했다.

그래도 비오는 날 별식인 전을 먹으며 쫀득한 삶을 풀어냈다. 가장 연장자인 반장 아주머니가 심오한 결론을 주셨다. 여자의 일생은 눈물이 엑기스야. 눌리고 다져져 세상 품을 가슴을 키워온 건데 지내놓고 보니 다 나쁜 것만은 아니었어.

앞집 중간 언니는 애매하다. 연배인 반장 아주머니의 여자의 일생에 거부감이 있어 반박은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을 것이 뻔히 보이는데 그 속이 오죽 했을까. 갈등 심한 세대로 쫄깃한 사연에 배를 움켜쥐고 웃었다. 눈물 날 만큼 우습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공감 가는 이야기다.

가장 막내인 나. 그래봤자, 오십 줄이다. 신세대와 서로 다른 인종처럼 느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닌 쉰세대다. 그래도 무엇은 원하는지 호기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속에 한 발을 얹어 무엇인가를 위해 행동을 시작했던 세대다.

위대하다거나 퍽 아름답다거나 하면서 자신을 미화하진 않았어도 세상에서 내 존재를 인지해가며 살고 있다.

우리는 다양한 사람과 그보다 더 다양한 자연의 생명들과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시대적 상황이 어디에 초점이 맞춰지느냐에 따라 가치관도 사는 방식도 다르겠지만 결국은 함께 같은 시간대를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적절하든 부당하든 시대를 뛰어넘는 파격은 늘 엄청난 희생이 따른다. 안정을 위해서는 순응이 선이겠고 진보를 위해서는 이단의 반항도 필요하다.

비오는 날 야채통에 뒹구는 재료들을 긁어모아 만든 전이 맛있다. 세 여자가 풀어내는 인생살이 이야기도 맛나다. 어차피 어떤 형태로든 위기는 닥칠 것인데 근심에 짓눌려 주눅들지 말고 자부심으로 맞아들이고 돌보면 만사가 특별해질 수 있겠다.

특별을 위한 실제는 쉽고도 어렵다. 과욕은 버리되 어울릴 줄 아는 감성을 지키면 소용돌이에서 나를 지킬 수 있겠지. 폭풍도 긴 장마도 이겨내는 초목의 지혜를 생각해 본 날이다. 그래도 긴 장마는 불편하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