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 집에 가만히 있으면 아프지 않았던 곳도 아파 힘들어요. 30여 년 동안 해 왔던 봉사활동이라 이제는 일상 생활이 됐고, 나보다 더 어려운 홀몸노인들을 보살필 때는 마냥 행복해요.”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그의 나이 40대 중반이 됐을 무렵 동네 부녀회에서 우연히 실시한 ‘바르게살기운동’에 참여해 동네 및 바닷가 청소, 노인 무료급식, 거리질서 등의 활동을 하면서 봉사와 첫 인연을 맺은 고미지자(69)씨.
처음에 자신이 사는 인천시 동구 일대에서 작은 일거리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는 고 씨는 현재 동구노인복지관에서 물리치료사와 노인 무료급식 봉사 2년, 동구노인문화센터에서 물리치료사, 도서실 사서 및 대출·반납 봉사 4년 등 지역 내 노인들의 맏며느리·맏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도 30여 년의 봉사활동이 힘이 들었던지 지난 6월부터는 몸이 좀 좋지 않아 동구노인문화센터 봉사는 잠시 접고 동구노인복지관에서만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다.
몸이 나아지면 곧바로 원래대로 활동을 다시 할 것이라는 고 씨에게 최근에는 동 주민센터에서 노인돌보미 요청까지 들어오는 등 그의 홀몸노인 봉사활동에 큰 힘이 되고 있다.
특히 고 씨는 2009년 인천세계도시축전 때 행사장 안에서 각종 시설 안내봉사활동을 했으며, 오는 10월 인천에서 열리는 전국체전에서도 봉사활동을 할 예정이다.
“처음에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남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 부녀회 등에서 나보다 더 어려운 홀몸노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해서 시작한 봉사인데 이제는 생활의 일부가 됐다”는 그는 “지난 4월 자원봉사자 교육 때 하반신과 팔을 사용하지 못하는 한 장애인이 자원봉사자와 함께 입으로 어려운 자수를 놓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고, 그때 봉사의 소중함을 알았다”고 말했다.
또한 “노인 무료급식 때 노인들이 짧은 기다림을 참지 못하고 다른 노인들에게 불편을 주거나 봉사자들에게 행패를 부릴 때와 홀몸노인 가구를 방문할 때 도둑으로 몰릴 때가 가장 힘들었다”며 “그래서 요즘은 꼭 2~3명씩 같이 홀몸노인 가구를 방문한다”고 그동안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어 “홀몸노인들이 마냥 즐거워하면서 고맙다고 이야기해 줄 때는 정말 힘이 난다”는 고 씨는 “요즘에는 봉사활동을 하지 않으면 하루가 너무 길고 또 아프지 않았던 곳도 아플 때가 많다”며 자신이 봉사에 빠진 이유를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최근 기관에서 예산 문제로 노인봉사자 인원을 감축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마 노인봉사자들이 노인일자리로 이동해 지출되는 인건비 때문인 것 같다”며 “한 달에 고작 교통비 정도밖에 되지 않은 푼돈 때문에 노인봉사자들의 즐거움을 뺏는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며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1남 1녀의 자녀를 모두 출가시키고 남편과 여생을 보내고 있다는 고 씨는 “오늘 하루하루 건강하게 봉사활동을 하다가 나중에 남편과 같이 편안하게 저세상으로 갔으면 좋겠다”며 소소한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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