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을 대표하는 월미도는 지금도 유원지로서의 기능을 여전히 수행하고 있다. 특히 주말에 월미도에 간 이들이라면 누구나 전쟁의 기억을 품은 월미도가 아니라 연인들의 낭만과 사랑이 가득한 월미도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놀이기구가 요란하게 돌아가고, 유행가가 비트 있게 흘러 나오는 가운데, 손에 손을 잡은 연인들과 아이들은 월미도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그러나 한국 영화가 기억하는 월미도는 한국전쟁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인천상륙작전이 수행된 곳이다.

북한 영화 ‘월미도’가 김일성 신격화와 주체사상의 확립을 홍보하는 장으로 월미도 해병포대의 이야기를 영웅적으로 그리고 있다면, 남한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제목에서 이미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스펙터클한 화면 속에 그리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인천상륙작전’은 월미도를 중시하지 않는다.

 영화의 배경은 부산인지 대구인지 명확히 드러나지 않지만(아마 부산 같다), 그곳에서 스파이의 임무를 띤 북한 공작원과 남한 정보부와의 치열한 상륙작전 정보전이 벌어지고, 이 스파이 작전이 일단계로 맺어진 후 드디어 상륙작전이 진행된다.

그러니까 영화의 제목은 인천상륙작전이지만 영화의 배경은 인천이 아니라 부산이나 대구이며 영화의 전개도 대부분 그곳에서 이뤄지고, 마지막 부분에서야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월미도가 그리 중요하게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지 작전의 배경으로만 등장하지 월미도라는 특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이런 것은 인천상륙작전을 다룬 다른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거기에는 사연이 있는 것 같다.

인천의 문화를 부지런히 연구한 이희환의 저서 「仁川아, 너는 엇더한 도시?」를 보면 인천상륙작전을 수행하던 당시 월미도에는 많은 원주민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런 예고도 없이 네이팜탄을 쏟아 부어 많은 이들이 영종도나 인천으로 피란을 갔다고 한다.

작전 후 다시 월미도로 돌아가려 했지만 길을 미군이 막고 섬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해 자신들의 집으로도 가지 못한 아픈 사연이 있다. 무고한 양민이 죽고 쫓겨난 이야기. 이런 사연과 더불어 지난 연재에서 거론한 미군 주도의 작전이라는 한계 때문에 마음 편하게 스크린에 담기가 쉽지 않은 여건도 있었다.

   
 
조긍하 감독의 ‘인천상륙작전(1965)’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거대한 규모의 영화라는 점이다. 신영균, 김혜정, 윤일봉, 장동휘, 박암, 허장강, 황해, 이대엽, 김석훈, 방수일, 송해, 이해룡 등 1960년대 영화를 좀 봤다고 하는 이들에게는 너무도 반가운 얼굴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야말로 총출동한다. 여기에 액션신의 규모도 상당하다. 당시 신문의 기사를 보면 이 영화의 규모를 알 수 있다.

“구정 흥행가는 ‘인천상륙작전’이 휩쓸고 있는 인상이다. 제작자 유성엽 씨가 원작을 썼고 편거영이 각색한 이 영화는 유엔군사(軍司)와 국방부, 육해공군과 해병대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스펙터클한 군사영화이다. 유엔군 장병 70여 명이 특별출연한 것도 이색.”(경향신문 1965년 2월 1일자)

당시로서는 정말 드물게 유엔 장병이 출연했다. 그야말로 연합군 주도의 인천상륙작전을 제대로 스크린으로 복원할 여건이 된 것이다. 그런데 위의 기사와 달리 이 영화는 그리 큰 흥행을 하지 못한 것 같다. 당시 언론에서도 이 영화를 많이 다루지 않았다. 아니, 많이 다루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자료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적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해외 수출을 신청해 승인이 됐다. 그러나 후속 기사가 없는 것을 보면 해외에서도 큰 반응을 얻지 못한 것 같다.

영상자료원에 적혀 있는 영화의 줄거리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6·25 동란 중 유엔군의 군사기밀을 탐지하기 위해 아군 부대에 잠입한 북한 여간첩(김혜정)은 정보장교인 신 대위(신영균)와 접촉한다. 그에게 진실한 사랑을 느낀 그녀는 자신의 정체를 고백하고, 북한군에게 역정보를 제공하여 드디어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을 성공리에 수행하게 된다.”

영화의 핵심은 스파이영화이고, 마지막에 스펙터클한 액션을 설정해 두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지금 영상자료원에 남아 있는 필름은 국내 상영본이 아니라 해외 수출용 버전 같다.

모든 대사가 영어로 더빙됐고, 심지어 중국어 자막이 표시되어 있다. 추측컨대 당시 자유중국, 즉 타이완으로 수출한 버전 같다. 재미있는 것은 모든 대사를 영어로 듣고 중국어 자막을 봐야 하기 때문에, 우연의 일치이지만 당시 한국전쟁이 미국과 중국의 세계대전의 양상을 띠었다는 것을 은연중에 증명한다.

   
 

임권택 감독의 ‘아벤고 공수군단(1982)’도 ‘인천상륙작전’과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제목이기도 한 아벤고 공수군단은 맥아더 사령부에 직속된 부대인데, 인천상륙작전을 은폐하기 위해 다른 장소에서 작전을 한다는 확증을 북한에게 주기 위해 거짓 작전을 하는 내용이다.

임권택의 전쟁영화가 그런 것처럼 인간적인 고뇌와 사랑이 함께 녹아 있다. 이 영화 역시 제작비 7억 원의 대작이지만 크게 흥행을 하지도, 좋은 평가를 받지도 못했다. 1970년대 국책 반공영화를 만들던 임권택의 성향을 엿볼 수 있는 영화일 따름이다.

‘블루 하트(강민호, 1987)’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1951년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수색작전을 하던 미국 함정이 북한군에게 포로가 된다. 군사기밀이 누설될 위험에 처하자 그들을 구출할 작전을 펼쳐 결국 남한군이 이들을 구한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는 당시 한국전쟁의 모습을 재현하기보다는 1980년대 액션영화의 흐름 속으로 포로 구출을 위치시켜 역사성을 스스로 거세시켜 버렸다. 흥미롭게도 ‘아벤고 공수군단’과 ‘블루 하트’ 두 영화 모두 인천상륙작전을 다루지 않고 인천상륙작전 직전의 정보전을 다루는데, 이것은 ‘인천상륙작전’과도 바로 연결된다.

그런 점에서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만희, 1963)’은 다르다. 스파이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야말로 제대로 된 전쟁영화이다. 그런데 이 영화 역시 인천상륙작전을 전면에서 다루고 있지는 않다. 영화의 오프닝이 인천상륙작전의 시작이다.

해병대는 바로 인천시로 진격하고, 그 기세를 몰아 북쪽으로 나간다. 그런데 중공군의 기세에 눌려 어려운 전투를 치르게 되면서 전쟁에 대해 회의하게 된다.

이만희 감독의 많은 영화가 그런 것처럼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전쟁의 무의미함과 허무를 담아 이념이 몰고 온 학살의 현장을, 전쟁영화의 틀을 빌려 나직하게 들려준다.

   
 
인천에 상륙한 해병들이 북한군을 물리치고 빈 공장에 갔을 때 그곳에는 인민군이 저지른 학살의 증거, 수많은 시체들이 있다. 이만희 감독은 이 장면을 통해 전쟁과 이념의 잔혹성을 상징적으로 재현한다.

이렇게 보면 인천상륙작전을 다룬 대부분의 영화는 상륙작전을 집중적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전의 스파이전이나 이후의 상황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래도 미군 주도의 작전을, 그 대규모의 작전을 당시 기술로 그리기 어려운 측면이 강할 것이다. 월미도의 상황을 그리기에 양민들의 상황도 부담이 될 수 있다.

흥미롭게도 미국에서 제작한 인천상륙작전 소재의 영화가 있다. 월미도는 인천상륙작전이 수행된 곳이지만, 자유공원의 맥아더의 시선에 사로잡힌 곳이기에 미국이 바라보는 이 작전의 시선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햄릿 역으로 유명한 로렌스 올리비에가 맥아더 역을 맡고 ‘007’ 시리즈의 테렌스 영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통일교의 문선명 총재가 자본을 댔다고 하는 ‘오! 인천’이 문제의 영화이다.

과연 미국 감독이 미국의 시선으로 그렸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불행하게도 이 영화는 재클린 비셋, 벤 가자라, 미후네 도시로, 남궁원, 이낙훈 등 호화 출연진이 참가한 영화지만 4천600만 달러의 제작비를 투입하고 겨우 520만 달러의 흥행수입을 올리는 참패를 기록했다.

작전의 상황을 제대로 그리지도 못했고, 영화로서의 재미도 주지 못한 영화가 되고 만 것이다. 인천상륙작전을 다룬 영화를 잘 만들기는 쉽지 않은 모양이다. 우리나 미국이나…. <강성률 - 영화평론가, 광운대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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