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임새의 미학(美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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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임새의 미학(美學)
원기범 아나운서
  • 기호일보
  • 승인 2013.10.24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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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박동진(朴東鎭) 명창을 아십니까? 오래전 한 TV 광고에서 “제비 몰러 나간다. 제비 후리러 나간다.”는 흥보가의 한 소절을 불러 유명세를 탄, 판소리의 명창입니다.

당시에는 판소리 등 국악을 이용한 방송 광고가 흔치 않던 시절이라 그 광고는 꽤 파격적이고도 신선하게 받아들여졌고 덩달아 박 명창에 대한 관심도 매우 높았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박동진 명창은 1916년 충청남도 공주 출신으로 16세 때 지역을 방문한 국악예술단체인 협률사의 공연에 감명을 받아 판소리에 빠져들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18세 때부터 당대의 명창으로 이름난 여러 스승들에게서 심청가·춘향가·수궁가·적벽가·흥보가를 배우는 등 전국을 돌아다니며 소리를 익혔습니다.

 하지만 25세를 전후로 목이 상해 소리꾼으로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소리를 다시 찾기 위해 100일 독공도 마다하지 않고 소리 수련을 계속해 오던 중 1962년 국립국악원 국악사로 임용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그의 나이 43세에 흥보가를 완창, 판소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

당시에 소리꾼의 평균 공연시간이 20분 정도였다고 전해지는데 박동진 명창은 무려 5시간에 걸쳐 흥보가를 완창해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듭니다. 이어 1969년에는 춘향가(8시간), 1970년에는 심청가(6시간), 1971년에는 적벽가(7시간)를 완창하는 등 거의 모든 판소리를 완창한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그리고 판소리 다섯 마당 중 가장 비대중적이라는 적벽가의 완창 능력을 인정받아 1973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인간문화재) 제5호 판소리 적벽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고, 은관문화훈장을 비롯해 수많은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변강쇠타령·배비장타령·숙영낭자전·옹고집타령 등을 복원해 완창 발표회를 가졌고 성웅 이순신, 성서 판소리 등 새 판소리를 작창(作唱), 우리나라 국악계에 큰 획을 그었습니다. 박동진 명창의 판소리 예술은 대중성을 지향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또 ‘완창 판소리’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저는 박동진 명창의 생전에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이미 팔순을 넘기신 연세에도 노구를 이끌고 판소리 완창을 계속, 노익장을 과시하던 중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1시간짜리 생방송 프로그램에 갓 쓰고 도포 입고 출연해 눈을 가느스름하게 뜬 채 질문에 입담 좋게 대답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인터뷰 내용 중에도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사람이 한 시간 동안 말을 하기도 쉽지 않은데 하물며 창(唱)을, 그것도 한두 시간도 아닌 일고여덟 시간씩 어떻게 완창을 할 수 있는가가 몹시 궁금했습니다. 무슨 비법이라도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판소리 완창의 대가인 박동진 명창의 대답은 상상 밖의 것이었습니다. 그가 평생에 걸쳐 판소리를 수백 회 완창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고수(鼓手)가 추임새를 잘 넣어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좋지’, ‘잘한다’, ‘얼씨구’ 등의 탄성(嘆聲)으로 창자(唱者)의 흥을 돋우는 추임새가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고수의 추임새가 없다면 제 아무리 훌륭한 명창이라도 절대로 몇 시간씩 완창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만큼 반응과 교감이 중요하다는 말일 것입니다. 저는 그 대답을 듣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일방의 전달이 아니라 쌍방이 함께 교감하고 호흡하는 것! 비단 공연장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크고 작은 여러 스피치의 현장에서도 똑같이 적용될 것입니다.

메시지 전달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이루는 데 비언어적 요소, 즉 전달하는 사람의 표정·몸짓·목소리·시선·태도 등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을 여러 차례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입장이라면 말하는 사람(화자)이 더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판소리에서의 ‘추임새’ 역할이 될 것입니다.

추임새를 반드시 말로 할 필요는 없습니다. 고개를 끄덕거린다든지, 눈짓을 통해 공감을 표현한다든지 해서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있습니다.”라는 신호를 계속 보여주면 됩니다.

듣는 일을 잘 하기 위해서는 추임새가 필수조건입니다. 오늘의 과제입니다. 소통의 전제조건인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추임새를 통해 나타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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