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국성 변호사/기호일보 독자위원장

  추석 무렵 어머니가 계신 대전에 내려가다가 고속도로 가판대에서 구입한 한 권의 책이 잠들어 있던 내 가슴을 수 개월째 흔들었다. 한양여대 안병대 교수가 저술해 발간한 「셰익스피어 읽어 주는 남자」에 나오는 4대 비극의 여진이 생각보다 강했다.

작가의 지혜와 통찰력이 엄청난 내공을 발휘하고 있고 더불어 작가의 시각을 통해 새로 해석된 비극의 흐름이 나의 깊은 영혼에 이어져 흐르는 느낌이다.

이 책에 따르면 1564년 4월 23일 태어나 1616년 4월 23일 눈을 감은 사람이 있다. 그의 성은 흔들다(shake)와 창(spear)을 합성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가 태어난 스트랫퍼드는 인구 1천500명 내지 2천여 명의 작은 교역도시였다.

그는 생전에 사극 10편, 희극 13편, 비극 10편, 로맨스극 4편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우리가 한 번은 들어봤던 제목인 「말괄량이 길들이기」, 「한여름 밤의 꿈」, 「베니스의 상인」, 「끝이 좋으면 다 좋다」등의 희극도 그에 의해 작품으로서 런던의 극장 무대에 올려졌다.

그가 쓴 4대 비극 중 「백베스(Macbeth)」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의 이야기라고 한다. 양심을 기만하고 야망을 이루었으나 그 대가로 불면에 시달리고 있는 영혼에 관한 보고서이며, 인간의 마음 속에서 벌어지는 선과 악의 전투기록이고, 부정하게 왕좌를 빼앗고 악의 들판을 줄달음치던 자가 파국의 절벽에서 추락하며 인간의 양심을 일깨우는 성서라고 한다.

반란군을 진압한 맥베스 장군은 세 명의 마녀들에게 장차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된다. 마녀들의 예언을 굳게 믿은 맥베스는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자신을 충신으로 믿어 주던 던컨 왕을 살해하고 동료 뱅코우 장군도 살해, 마침내 왕이 된다.

하지만, 자신의 범행이 얼마나 부도덕하고 정의롭지 못한 일인지를 자각하고 있던 맥베스는 나타나는 뱅코우의 유령으로 괴로워 하고 남편의 살인을 적극 도운 아내는 피 묻은 손을 수없이 씻으면서 몽유병 환자가 된다.

저자는 이 비극을 설명하면서, 왜 인간은 양심을 외면하거나 팔아 넘기면서까지 탐욕을 추구할까? 인간은 탐욕의 노예인가, 아니면 이상의 노예인가를 부르짓고 있다.

우리 사회는 누구나 인지하고 동의하는 양심을 갖고 있을까 하고 의심이 드는 사회이다. 동일한 사건·사고임에도 그 사건을 바라보고 설명하는 기준과 결과는 360도로 정반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사회적 가치 분배의 기준이고 권력의 분배 기능을 하고 있는 정치에 이르면 어느 누구의 주장이 사실인지조차 제대로 인식하기 어려울 정도로 서로의 주장들이 다르고 입장이 다르다.

국가기관 구성원들이 자행한 소위 댓글사건, 최고 권력자 간 정상회담 자료의 보관문제, 국민연금과 노인기초연금의 관계, 검찰총장의 개인 가정의 문제 등의 정치 갈등을 지켜보고 있으면 누구의 양심이 맞는지, 누가 양심을 기만하고 있는지조차 알기 어렵다.

전쟁의 영웅이었던 맥베스 장군이 자기를 절대적으로 믿어 주던 던컨 왕을 배반해 왕의 권력을 빼앗고 있다면, 민주주의 가치를 기만하고 자신들의 집단적 이익을 추구하는 한국 사회의 권력 집단들도 한국형 맥베스 장군이 아닐까? 밤 하늘의 별들이 빛을 감추고 권력을 탐하는 인간들은 달콤한 유혹의 마녀들의 꾐에 빠져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을 통찰하는 능력을 상실한다.

 아름다운 진실이 더럽혀지고, 더러운 거짓이 아름다운 진실처럼 안개와 공기 속을 날아다닌다. 악을 행하고 거짓에 몸을 빼앗기고도 곧 자기 눈 앞에 펼쳐질 권력의 달콤함에 빠져 이성을 상실한 것이다.

악으로 시작한 일은 악으로 다져야 한다는 3막 2장 55행에 이르면 나도 모르게 슬픔과 분노의 탄식을 하고 만다. 책에서 저자가 맥베스를 통해 한국 사회에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양심의 회복’이라고 생각한다. 양심을 배반하는 자는 영원히 잠 못 이루리라고 셰익스피어는 말했다고 한다.

 권력을 잡으려고 오늘도 아름다운 것을 더럽히고 더러운 거짓을 아름답다고 강변하는 수없이 많은 맥베스 장군들이 살고 있는 한국 사회의 위기를 나는 느끼고 살고 있다고 말하면 지나친 불안일까? 아! 위대한 셰익스피어여, 한국의 수많은 마녀와 맥베스 장군에게 부디 그대의 무대에는 오르지 말아 달라고 부탁해 주시길 충심으로 기원드리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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