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년간 봉사활동을 해 온 안성시 우주자동차정비 김학균 대표가 차량을 정비하던 도중 취재 요청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당최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이다. 기름이 잔뜩 묻은 작업복 속에 흰색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까지 했다. 도올 선생이 자신의 상징인 한복을 대신해 양복을 입은 듯하다. 이유를 물었다.

지난해 입학한 한 전문대학 초청 강연에서 정비명장이 고객 서비스 강화 차원에서 제안한 것이란다.

자동차 정비를 하기에는 가게가 비좁다. 가뜩이나 비좁은 작업장 한쪽에 채소가 잔뜩 쌓여 있다. 단골 고객들이 차로 싣고 왔단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고객들의 기부(?)가 부쩍 늘었다.

안성시 우주자동차정비 김학균(58)대표가 나눔을 시작한 것은 34년 전.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면서 근처 보육원에 생필품을 지원하면서부터다. 중학교를 마치고 바로 사회에 뛰어든 터라 외로움이 컸다. 타향의 설움을 달래 볼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다. 월급 대부분을 보육원 지원에 사용했다.

1986년.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했던가. 6년여의 타향살이를 끝내고 귀향했다. 고모부의 도움을 받아 대덕면에 6.6㎡ 남짓한 가게를 얻어 자동차 배터리를 팔았다.

 좁은 사글셋방 한 칸. 아내와 자식이 편히 함께 눕기에는 비좁았지만,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눈에 밟혀 나눔의 발길을 멈추지 못했다.

1988년. 한 번의 확장 이전을 거치면서 벌이도 많이 늘었다. 그러나 아내 손에 쥐어지는 돈은 매일 그대로다. 김 대표 자신만 아는 행복한 나눔이 늘어서다. ‘아빠’라고 부르며 참고서 살 돈을 달라는 보육원 아이들도 생겼다.

정기적으로 생필품을 사 보내 줘야 할 시설도 많아졌다. “처음엔 깜짝 놀랐어요. 아이들이 ‘아빠’라고 부르며 참고서 살 돈을 달라는데 놀라지 않을 여자가 어디 있겠어요?” 아내 이진욱 씨의 말이다.

1994년 현재 정비공업사가 위치한 보개면에 건물을 지어 이사를 했다. 고향인 보개면 지역 노인 보호·수용시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연탄과 쌀을 사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웃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홀몸노인들에게는 식자재를 사 보내기도 했고, 정성껏 김장김치를 담가 보냈다.

최근에는 한 술 더 떠 틈만 나면 차를 운전해 나가 버려진 파지를 줍는다. 우연히 알게 된 한 할머니 때문이다. “둘째 아들은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큰아들은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데 아내가 아이를 낳고 가출했어요.

 할머니가 파지를 주워 아들과 손자를 먹여살리죠. 사정을 알고 어떻게 돕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최근 기부를 아끼지 않는 고객들이 고마워 차량 무상점검 서비스를 시작했다. 간단한 부품은 협찬을 받아 공짜로 갈아 준다. 정비대금을 채소나 쌀로 받을 때도 많다. 아내가 모든 것을 이해해 주니 천상배필이 따로 없다.

동장군의 기승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즈음, 김학균 대표는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할 연탄 수를 계산하느라 바쁘다. 손에서 계산기를 내려놓지 않는다. 마음은 벌써 연탄을 받아 들며 환하게 웃을 이웃들에게 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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