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은 가을의 끝이면서 겨울이 시작되는 달이다. 절기상으로 입동을 지났고 소설도 지났다. 그러니까 절기에 맞게 겨울에 접어들었고 소설이라 할 만한 눈도 내렸다. 본격적인 겨울 시작이다. 삼라만상이 멈춘 듯이 웅크리고 있는 겨울은 한 잠 쉬어가는 숨고르기 같은 시간이다.

봄 여름 가을, 거둬들일 수확을 기대하면서 누구나 애를 썼다. 소출이 적어도 곡간이 넘쳐도 여기까지 흘러온 계절은 꼼꼼하게 각인된 역사가 있다.

쭉정이 수확은 노력이 신통찮았는가 자책하는 마음에 도와주지 않은 환경 탓도 해본다. 풍성한 가을걷이를 했다면 내 노력에다 은인의 도움도 받았을 확률이 높다. 어쨌든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라 창작하는 작가들도 이때쯤이면 출판과 전시회가 많아진다.

준비 기간이 길게는 수년에서 짧게는 일 년이지만 작가의 열정과 에너지가 농축된 창작품은 대면하면 가슴이 뛴다. 무엇을 얻어가든지 설사 그것이 실망스러움이라 해도 작가의 예술성은 존중받아야 한다. 고상한 종소리로 가슴을 울리는 감동이 흔하다면 이것도 대중적이라 변별성이 없어진다.

가끔 아주 가끔, 우리는 박물관을 가고 클래식 공연장을 찾고 특별히 예약된 레스토랑에서 우아한 저녁을 먹는다. 쉽고 빠르게 즐기는 페스트 푸드처럼 세상천지에 널려 있다면 에이는 감명으로 가슴을 푹 적셔볼 경험은 못할 수도 있다.

이 가을 특별히 11월에만 그림과 도예 전시장과 출판 기념회 등등 7곳을 다녀왔다. 그중에는 작가의 인사말이나 초대 글 교정과 퇴고를 봐준 화첩도 있어 남다른 애정도 있었다.

매번 다 벅차지는 않았다. 조금 아쉬워도 넘치게 뭉클해도 작가의 예술성은 변별에 가치가 있다. 무엇을 얻어 가 내 삶을 윤택하게 하는데 어떻게 활용해 볼 것인지는 개인의 기호이면서 역량이다.

 알다시피 삶은 물질만으로 다 채워진다고 해결 되지 않는다. 예술 창작은 그래서 만물의 영장이 된 사람만이 누리는 특권이고 사람만이 갖는 고뇌이다.

한 해를 잘 살아 낸 산짐승은 안전한 장소에서 긴 겨울잠을 청하고 있을 것이고 몸 부풀려 씨앗과 열매를 키운 과목과 풀들은 털어내고 날려 보내 가벼워진 몸으로 겨울날 채비를 단단히 하고 있을 시간이다.

때로는 날카롭고 때로는 무디더라도 작가의 심장을 두드렸던 자극은 작가의 공명통을 울려 작품으로 세상을 만난다, 글로, 그림으로, 조각으로, 도예품으로, 혹은 목소리로, 연기로, 분야는 달라도 작품 속에 담긴 작가의 혼은 작가의 애간장을 녹인 결과물이다.

수준을 논하자면 비범과 평범의 차이에서 오는 작품의 평가야 당연히 받아들이겠지만 작가는 작품을 구상하고 만드는 데 예사롭지 않은 정성을 쏟았다. 그래서 더욱 허허실실 창작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사계절을 가진 우리는 겨울이 동면의 시간이다. 죽은 듯 웅크린 그 시간을 들여다보면 생명을 잉태하고 생명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는 창조의 시간이다.

 모든 것을 쏟아내 생명을 출산한 자연도, 작가도, 휴지기를 가져볼 시간이다. 지금부터 아름다운 변태(變態)를 꿈꾸며 동면을 즐겨볼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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