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지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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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지 우정
소설가/기호일보 독자위원
  • 기호일보
  • 승인 2014.02.11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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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 년, 참 긴 세월이다. 민망한 가정사까지도 허물없이 털어낼 수 있기까지는 사연도 세월도 무엇 하나 수월하지 않았다. 초보엄마 넷이 모여 육아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작한 모임이 지금까지 잘 이어져오고 있다.

열정과 사명감으로 마음만 부산스러웠지 노련한 경험이 부족했던 초보엄마들이라 아이를 키우는 데 웃지 못 할 해프닝도 여러 번 있었다. 4명의 엄마들은 좋은 강좌가 있으면 정보를 공유해 함께 듣고 체험학습과 여행도 많이 다녔다. 가장 큰 성과는 독서지도였다.

 4명의 엄마들이 책을 선정해 학년에 맞게 반을 나누어 교안을 만들고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과 독서토론을 했다. 한 달씩 돌아가며 각자의 집을 학습장으로 제공하고 간식도 챙겼다. 아이들도 서로 잘 어울려 친척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엄마들은 엄마들끼리 아이 양육문제뿐만 아니라 고부갈등이나 남편과의 문제 등 껄끄러운 가정사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고 위로를 받으며 서로에게 힘이 되었다.

아이들이 자라고 엄마들도 자라고 세월도 자랐다. 남편 직장 때문에 혹은 교육여건이나 개인적인 가족문제 때문에 인천을 떠나는 집들이 생기면서 한동안 모임이 끊어진 적도 있었다. 지금은 8명 아이들이 각각 개인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가치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빠른 아이는 취직을 했고 대다수가 학업 중이다.

유학 간 애들은 뉴욕에서 올 여름에 10년 만의 재회를 준비 중이다. 많이 커서 유아기와 초등학교 시절의 순진함 대신 세상을 보는 안목으로 현실적인 눈을 가졌겠지만 어린 시절 1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했던 영향은 곳곳에 남아 아이들의 성장과정에 심적인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눈 오는 주말에 엄마들 4명이서 펜션을 빌려 하루를 묵었다. 몸이 멀어지고 아이들도 입시 준비하느라 바쁘고 덩달아 엄마들도 마음의 여유가 없다보니 다음에 보자, 언제 한번 보자, 영양가 없는 말로만 공수표를 만들곤 했다. 나이 먹어 오십이 코앞인 현정이 엄마가 “도대체 다음이 언제야? 지금 바로 만나 우리 당장 만나.” 노래를 불렀다. 그래서 다시 시작한 것이 3년 전이다.

방바닥이 자글자글 끓는 찜질방 같아 누워 수다 한판 벌리기에 맞춤인 펜션의 가족실에서 우리는 참 행복한 1박을 했다. 서로 하늘 아래 사는지조차 몰랐던 남남인 우리가 아이들을 매개로 만나 시행착오는 겪었지만 성숙한 여성으로 따뜻한 모성을 나누는 엄마가 되고자 애쓰고 노력했던 시간들이 돌아보니 뭉클했다.

“나 고아 됐어요. 이제는 내 친정엄마도, 언니도, 오빠도, 여기 모인 언니들이 그 역할 다하면서 내 어리광도 투정도 조건 없이 받아줘야 해요.” 가장 막내인 진호 엄마의 눈빛이 젖는가 싶더니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걱정 마 친정이 세 집이나 생겼는데 백 든든하니 다 받아주고 막아줄게.” 가장 나이 많은 수진이 엄마가 어깨를 안고 다독거려 준다.

그 시절 바람 많은 인천에서 모두 타지에서 온 엄마들이 정을 나누며 쌓아왔던 추억들을 풀어내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와인 한 잔에 볼이 발그레해지고 마음도 헤헤 실실 풀어지고 방바닥은 따끈따끈해 몸을 노곤하게 풀어주고 ‘참 좋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지금까지는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살아오느라 나는 늘 후순위로 밀쳐놓았는데 이제는 우리, 바로 나를 챙겨주며 살자고 건배하고 서로를 안아주었다. 따뜻한 살 냄새가 참 좋다. 아줌마 할머니로 예쁘게 사는 공부를 하며 나이 들자 다짐했다. 의리 지키는 ‘4총사 예쁘니’라고 이름을 지었다. 촌스럽다고요? 묵은지 깊은 맛을 알면 그런 소리 절대 못할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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