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년성 인천시 서구청장
 2014년 갑오년 새해를 맞으며, 특별한 소식을 전해 들었다.

우리 서구가 2013년 12월 말 기준으로 49만35명의 주민등록인구에 외국인 1만433명을 합쳐 드디어 상주인구 50만 명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2010년 구청장 취임 초 참석한 여러 행사 자리에서 ‘43만 서구민과 함께’ 라며 인사말을 시작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상주인구 50만 명이라니!

최근 이런 저런 일들로 소도시를 방문할 때면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혹시나 나의 이런 모습이 상대방에게 으스대는 것으로 보일까 행동에는 좀 더 주의를 기울이지만 주민들에게서 기초하는 지역적인 파워를 감춘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인구는 지역의 경쟁력을 의미한다

이처럼 현대사회에서 인구는 곧 그 지역의 경쟁력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구는 그 지역이 앞으로 더 발전할지 아니면 퇴보할지를 판가름하는 주요인이 된다.

 지난 7월 파산을 결정한 미국의 디트로이트시의 경우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1970년대 후반까지 북미 자동차 산업의 메카로서 전성기를 누리던 디트로이트시는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지역 내 자동차 산업이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

그러면서 한때 180만 명에 달했던 인구는 70만 명으로 줄었고, 이로 인해 세수도 크게 감소해 재정이 바닥나 버렸다. 이러한 재정을 메우기 위해 지방채를 계속 발행하다 디트로이트시는 결국 파산이라는 결정에 이르게 됐다. 

주민은 그 지역의 재원이 되고 나아가 생산자를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노동력의 근간이자 소비자로 지역 내 기업을 유인한다.

그리고, 이 기업들은 다양한 사업으로 지역 내 일자리 제공과 지역 상권의 번영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에 일익을 담당한다.

이렇게 사람과 기업이 북적거리는 지역은 그 만의 생동감으로 또 다른 이주민을 끌어들이고 이 과정이 반복돼 누구나가 아는 뉴욕과 파리·도쿄와 같은 거대 도시가 탄생한다.

하지만, 모든 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이중성을 갖기 마련이다. 주민이 많아진다는 것은 주민 스스로가 바라는 욕구가 많아지는 것이며 이러한 욕구들이 충족되지 못하거나 무리들 사이의 상반된 욕구가 생겨 지자체 행정기관이 중간자의 입장에서 어느 편에도 서지 못하게 되면 주민들의 아우성은 곧 치명적인 해일로 다가온다.

그렇다고 인간이기에 갖고 있는 욕구와 서로 다른 삶, 다른 배경으로 인해 생기는 다양성을 부정하거나 잘못된 것으로 치부할 수도 없다.

결국 이러한 다양한 욕구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가 그 지역의 숙제다. 이 숙제는 더 이상 도시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공직자와 정치인들만의 것도 아니며, 딱 떨어지는 정답도 없다.

규모가 아주 작은 국가나 지역이라면 모를까, 아무리 능력있는 정치인과 공직자에게서 나온 혜안이라도 모든 주민을 만족시키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주민 참여의식이 선진도시로 이끈다

그래서일까. 선진도시를 말할 때마다 ‘주민의식’과 지역행정에 대한 주민들의 ‘참여의식’이 바늘과 실처럼 항상 따라붙는다. 즉, 도시가 광대해질수록 가능한 많은 주민들이 참여해 님비적, 핌피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서로 간 이해와 양보를 통해 얻은 답만이 내가 아닌 우리들을 위한 가장 좋은 해답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시스템화 될 때 그 도시는 발전적인 미래를 꿈꿀 수 있다.

선진도시는 외관상 발전만이 아닌 내면의 기준까지 갖춰졌을 때 비로소 정식화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내면이라 함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사고와 행동을 말한다. 상주인구 50만 명을 맞으며, 그동안 도시가 빠르게 성장한 만큼 우리의 내면 의식도 함께 꾸준히 성장해 왔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볼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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