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방송 만 20년째를 맞았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이지만 그간 방송을 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각계각층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분들과 인터뷰를 하며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 잊지 못할 분이 있습니다.

극동방송 재직 시절 저와 함께 ‘바람직한 언어생활’ 코너를 진행해 주셨던 구현정 교수입니다. 상명대학교 한국어문학과에서 후학을 양성하면서 국어문화원장으로, 대화학의 권위자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언젠가 방송 중에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의사소통의 기법’이라는 수업을 하면서 몇 가지 숙제를 내줍니다. 그 중에 하나가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표현하기’입니다.

일주일 동안 부모님께서 내게 해 주신 일에 대해서 감사하다는 표현을 하고 나서 결과를 발표하라고 하면 참 놀라운 말들을 해줍니다.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표현을 처음 해 보았다는 학생부터, 처음에는 ‘너 어디 아프냐?’고 이상하게 여기던 부모님이 사흘쯤 계속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이젠 네가 다 컸구나!’하면서 눈물을 흘리셨다는 이야기, 그리고 부모님이 용돈을 올려주셨다는 이야기에서 저녁 반찬이 달라졌다는 이야기까지 정말 마음 따뜻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참 흥미로운 내용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가장 가까운 가족 사이에 감사의 말이 가장 많이 흘러넘칠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지요? 아마도 ‘표현하지 않아도 알겠지’라는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구 교수는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팔순이신데, 제가 ‘엄마, 이렇게 잘 키워주셔서 감사해요’하는 말씀을 드리면 소녀처럼 부끄러워하시면서 ‘뭘, 여러 자녀 키우느라 변변히 해준 것도 없는데…’하고 말씀하시지만,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느낄 수가 있어요. 분명한 것은 감사의 말은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에게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대화의 물꼬를 트고 사랑을 회복시킵니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부부 사이에도 사랑이 식으면 감사가 줄어들게 되기 때문에 시들한 관계를 회복하려면 감사하는 말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자녀들에게는 어떨까요? 우리나라의 정서(情緖)상 자녀들한테 칭찬을 할 수는 있지만, 감사를 표현하는 것은 좀 어색하다고 느끼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칭찬은 주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것이어서 상대방에 대한 존중은 포함되지 않을 수 있지만, 감사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마음이 포함되어 있어서 그렇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칭찬보다 감사가 더 효과적일 수 있는 것입니다. “엄마 말을 들어 주어서 고맙다”, “아빠 심부름을 해주어서 고맙다”, “방을 잘 정리해 주어서 고맙다” 이런 말들을 자주 해 주신다면 자녀들은 그 어떤 칭찬보다도 더 기쁘게 받아들이고, 더 잘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감사를 표현하는 데도 요령이 있습니다.

첫째는 다른 사람이 예사로 넘기는 일에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찍 밥을 차려주는 아내에게, 힘들게 일하고 귀가한 남편에게, 아파트의 경비원께, 신문을 배달하시는 분께, 버스 기사분께 등등. 감사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둘째는 되도록 구체적으로 감사의 뜻을 전달하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무조건 “감사합니다”라고만 말씀하셔도 관계가 좋아지고 대화가 풍부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좀 익숙해지고 나면 무엇에 대해 어떻게 감사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감사를 받는 사람의 마음에게 훨씬 더 강하게 전달될 수 있습니다.

셋째로, 감사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무조건 많이 감사한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너무 지나치면 오히려 장난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으니까 지나치지 않은 합리적인 경계를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의 표현은 빨리 할수록 더 좋습니다. 끝으로 감사는 순수하게 상대를 소중히 여기고, 고맙게 생각하는 마음에서 끝내야 합니다. 어떤 목적의식이 담겨 있으면 감사의 파동(波動)은 잘 전달되지 않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감사는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힘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는 한마디의 감사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따뜻한 에너지로 남게 된다는 것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과제입니다. 자녀에게 혹은 아랫사람에게 칭찬 대신 감사의 말을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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