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지리아 무장군인 차량들이 외국인 탑승 차량을 앞뒤로 경호하며 포트하커트 에어포트로드를 달려 시내로 향하고 있다./최민규 기자
“중심을 잃고 혼돈에 빠진 아프리카, 이들에게 정말로 오콩코와 같은 힘센 지도자가 필요했을까?” 비행기를 3번 갈아타고 1만2천여㎞를 날아 어렵사리 찾은 나이지리아 제2의 항구도시 포트하커트(Port Harcourt). 지구 반대편까지 와서 갑작스레 드는 우문이다.

‘오콩코’는 나이지리아 출신의 치누아 아체베(Chinua Achebe)의 대표작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Things Fall Apart)」에 등장하는 소설 속 주인공이다. 언젠가 아프리카를 가게 될 일이 생기면 꼭 한 번 읽어 보고 싶었던 그의 책을 비행기 안에서 두세 번 곱씹어 읽었다. 책에서 전하는 아프리카 용어가 생소한 탓도 있겠지만 떠날 때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 실종자 구조의 혼란스러움에 상념(想念)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힘센 싸움꾼이며 전쟁 영웅인 오콩코는 나이지리아 한 부족의 추장으로 추앙받는 인물이지만 예기치 못한 실수로 마을에서 쫓겨나고 만다. 하지만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 마을은 백인 교회를 중심으로 유입된 서구 문명에 의해 더 이상 독단적이고 전통의 방식만을 고집하는 그를 리더로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마는 오콩코를 통해 작가는 우리가 모르는 ‘검은 대륙’ 아프리카를 조금은 이해해 주길 바랐을 것이다.

올해는 이곳 포트하커트가 ‘세계 책의 수도(World Book Capital)’가 되는 해다. 아이러니하게도 100년 전 이곳을 식민 지배했던 영국 총독 루이스 비스코트 하커트의 이름을 딴 도시에서 그들이 그토록 염원했던 책의 수도 행사가 열리는 것이다.

오는 23일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을 기념해 이곳에서는 세계 각국의 출판과 인쇄, 독서문화와 관련한 각종 전시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특히 차기 세계 책의 수도인 인천시가 파견한 사절단 일행을 비롯해 각국 유네스코 위원들도 굿럭 조너선 나이지리아 대통령의 초청으로 이곳을 국빈방문한다.
그러나 최근 이슬람 무장단체인 보코하람의 짓으로 알려진 버스 정류장 폭탄테러와 100여 명의 여중생을 납치한 사건까지 나이지리아 전역이 내년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극도로 불안한 상태다.

20일 오후 6시(현지시간) 취재진이 이곳 공항에 도착했을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임시 군 막사 같은 공항 입국심사대에서 무장군인들에게 둘러싸여 정신없이 입국 절차를 마치고, 호텔까지 앞뒤로 2대의 경호차량 호위를 받아 이동했다. 무장군인이 탄 호송차량은 공항에서 호텔까지 40여 분 거리를 마치 전시 상황을 방불케 하듯 요란한 경적을 울리며 달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곳 현지에 진출해 있는 대우건설 직원에 따르면 외국인은 항상 납치의 표적이 되기 때문에 무장군인의 경호 없이 그 어떤 곳도 함부로 나다닐 수 없다.

취재진이 호텔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현지 대우건설 직원은 자신도 이곳에서 4개월에 한 번씩 국내를 오가며 몇 년째 근무하고 있지만 ‘데포(기지·Depot)’ 밖에 나가 식사 한 번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가 근무하는 대우건설은 이곳에서만 벌써 세 차례 직원 피랍사건을 겪었다. 30년 가량을 현지 주민과 동화되기 위해 긴밀한 현지 네트워크와 수많은 사회공헌활동을 펼쳐왔지만 이들을 변화시키진 못했다.

그런데도 포트하커트가 세계 책의 수도가 된 이유는 책(Book)이 갖는 공공성(公共性) 때문이다. 매년 책의 수도를 선정하는 유네스코는 식민 지배 시절부터 비롯된 경제적·사회적 모순으로부터 지금까지 시달리고 있는 포트하커트가 책을 통해 분쟁과 갈등의 상처를 치유하고, 평화와 안정을 꾀하기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곳에도 이곳이 책의 수도임을 알리는 흔한 현수막과 안내문구 하나 찾아볼 수 없다. 테러의 위험에 도시는 무장군인들로 더 삼엄해졌을 뿐이다.

과연 이들은 23일 포트하커트에서 열리는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 기념행사에서 어떤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할지 궁금해진다.
나이지리아 포트하커트=지건태 기자 jus216@kihoilbo.co.kr
                     사진=최민규 기자 cmg@kihoilbo.co.kr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