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건태 사회부장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지난 며칠 ‘헌법 1조 2항’을 몇 번이나 곱씹어 되뇌었는지 모른다.

세월호 침몰 참사 보름이 지났다. 이제 생존자가 있을 것이란 실낱같은 희망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분노만 차올랐다.

사고 발생 초기, 현장을 찾은 대통령 앞에 무릎 꿇고 “우리 아이 좀 살려 달라”며 빌었던 한 아비는 분향소를 다시 찾은 그에게 “도대체 어느 나라 경찰, 어느 나라 군대에 우리 아이를 구해 달라고 해야 합니까”라고 따져 물었다. 영화 ‘변호인’에서 “국가가 곧 국민입니다”라며 울분을 토했던 배우 송강호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대목이다.

‘국민안전’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박근혜정부였기에 그에 대한 배신감도 그렇게 컸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백번을 양보해도 이번 사고에서 보여 준 국가의 무능함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은 세월호의 탑승객 인원은 물론 실종자 수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사고 발생 초기 컨트롤 타워로서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한 채 혼란만 가중시켰다. 또 해양수난구호기관인 해양경찰청은 전문성 부재를 여실히 드러낸 채 미숙한 초기 대응으로 인명피해만 가중시켰다. 여기에 사고 수습에 전념해도 모자랄 총리는 사표부터 제출해 정부가 보듬어야 할 실종자 가족의 아픔을 자원봉사자들이 대신하고 있다.

국가가 도대체 무엇을 했는지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이번 사고에서 국가가 보여 준 모습은 ‘무능’과 ‘무책임’을 넘어 비겁하기까지 했다.

박 대통령은 사고 발생 6일째인 21일 있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선장이 먼저 탈출한 것은 살인과도 같은 행태”라며 조사를 받고 있는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을 대놓고 일갈했다.

이후 TV에서는 속옷 바람으로 탈출하는 세월호 선장의 모습을 클로즈업하며 그를 사고의 원흉으로 모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그를 두둔할 생각은 없지만 실종자 구조가 촉각을 다투는 마당에 굳이 경찰 조사 중인 선장과 승무원을 대통령까지 나서 ‘살인자’라 낙인찍은 것은 누가 봐도 성급했다.

또 사고 원인을 수사 중인 검경 합동수사본부와 별도로 인천지검에 2개의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세월호 선사와 선주, 해운 비리 전반에 걸쳐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이고 있다.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 김한식(72)대표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한 데 이어, 모회사인 유병언(73)전 세모그룹 회장과 그의 일가에 대한 수사도 전광석화처럼 이뤄지고 있다. 이미 검찰은 김진태 검찰총장의 지시에 따라 유 전 회장 삼부자와 8개 업체 임직원 30여 명에 대해 출국금지한 상태다. 이 외에도 감사원과 금감원 등 사정기관이 마땅히 처벌해야 할 책임자를 찾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과거 대구지하철 화재와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그리고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 때도 그랬다. 들끓는 공분을 어떡하든 누그러뜨리려는 ‘희생 패러다임’이 아닌가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겹겹이 쌓여 온 적폐(積幣)를 바로잡고 ‘국가 개조’에 나서겠다”고 했다.

대형 재난사고의 배후에는 언제나 안전불감증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비리의 사슬구조가 있기 마련이다. 이를 뿌리 뽑는 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 전에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다’란 엄중한 당위를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국민은 지금 이번 사고의 배후에 있는 몇몇 ‘관피아(관료+마피아)’를 쳐내는 것에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복원력(신뢰)을 잃고 침몰하는 ‘대한민국호’를 국민이 저버리지 않도록 진정 정부와 국회, 사법기관 모두 환골탈태의 모습을 보여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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