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에도 원리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대화할 때 적용되는 가장 큰 원리가 바로 ‘협동의 원리’입니다.

사람들이 대화를 할 때는 대화를 통해서 서로 협동을 이루고 있다는 전제(前提)에서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말하는 사람은 지금 하고 있는 대화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파악해서 그 목적에 맞는 말을 하고, 반면에 말을 듣는 사람은 상대방이 한 말은 지금 하고 있는 대화의 목적이나 상황에 맞는 말일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해석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협동의 원리’입니다.

이것을 습관적으로 위반하는 사람은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에는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됩니다.

듣는 사람의 입장을 ‘협동의 원리’ 관점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아무것도 아니예요”하는 식으로 협동의 원리를 위배하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일까요? 지금 상대방한테 화가 났거나, 아니면 무언가 밖에서 무슨 문제가 있어서 상당히 불편한 상태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정말 말하고 싶지 않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나한테 관심을 좀 더 가져 달라는 숨은 뜻이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말을 듣는 관점에 있을 때는 상대방이 협동의 원리를 위배한 것에 대해 불쾌해하고 화를 낸다거나, 왜 그러느냐고 꼬치꼬치 물어가는 것은 오히려 역(逆)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오히려 지금 상대방이 어떤 상태이고, 이런 말 속에 숨겨진 다른 뜻은 없는지를 찾으려는 적극적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사실 협동의 원리라는 것이 쉬워 보여도 이것을 잘 지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영국 출신의 언어철학자 폴 그라이스 교수가 주창한 협동의 원리에는 네 가지의 부수적인 원칙이 있습니다.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양(量)의 원칙입니다. 이것은 필요한 양만큼만 정보를 제공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필요 이상으로 많은 정보를 말하는 것도 양의 원칙을 어기는 것이고,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정보도 주지 않는 것 역시 양의 원칙을 어기는 것입니다. 대화를 하면서 너무 많은 것을 말하는 것이나 너무 적은 것을 말하는 것이 모두 좋지 않다는 말이니까 결국 적당한 분량의 정보를 담아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서로 다툴 때와 같이 감정적인 대화에서는 오래전부터 쌓아 뒀던 이야기를 한꺼번에 다 말하려고 해서 너무 많은 양을 말함으로써 양의 원칙을 어기기도 하고, 아무 말도 안 하고 자리를 피해서 최소한의 정보도 주지 않아서 양의 원칙을 어기기도 합니다.

대화할 때에는 혼자만 너무 말을 많이 해도 문제이고 반대로 너무 조용히 하고 있어도 문제가 됩니다. 넘치는 것도 아니고 모자라는 것도 아닌 정보의 양이 중요합니다. 요리할 때 간을 맞추는 것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소금을 너무 많이 넣으면 짜고, 적게 넣으면 싱겁기 때문에 적당한 양을 넣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언젠가도 말씀드린 것처럼 소통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은 바로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입니다. 그리고 소통의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대화’인데 대화에는 협동의 원리가 작동합니다.

협동이 없는 대화는 소통이 아니라 불통입니다. 일부러 대화를 단절시킨다든가 공격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사회생활 자체에도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과제입니다. 협동의 원리 중 첫 번째 원칙인 ‘양의 원칙’이라는 관점에서 여러분의 대화 습관을 돌이켜보고 고칠 부분은 없는지 헤아려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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