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 대화의 주 메뉴인 학교와 군대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화제는 축구와 얼차려다.

축구와 관련한 군대 얘기는 자신을 거의 슈퍼맨 수준으로 묘사하는데 듣는 이들은 거짓인 줄 알면서도 즐겁게 들어줄 수 있지만 얼차려는 사정이 다르다. 사람을 극단적인 고통으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얼차려는 원산폭격으로 맨땅에 머리를 대고 버티다 보면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버티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군홧발이 날아온다. 이 외에도 한강철교와 침상 위 폭탄, 매미, 총 거꾸로 들고 오리걸음하기 등 대한민국에서 군대를 갔다 온 남자들이면 다들 꿰는 스토리로 생각만 해도 몸서리 쳐지는 기억이다.

과거에는 꼭 군대를 가지 않아도 이러한 얼차려는 기본적으로 고등학교에서 다 소화했다. 군사정권 시절이던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고등학교에 교련이라는 수업이 있었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학교에서 군사훈련으로 총기 분해 조립과 총검술 등을 익혔다.

그런 교련시간을 담당하는 교사 상당수가 군 장교 출신이라 걸핏하면 원산폭격에 한강철교 등으로 학생들을 괴롭히기 일쑤였다. 다 학습의 과정이라고 하지만 당하는 학생들이야 웬 고생이냐.

그런데 20~30년 전 학교에서 가해졌던 얼차려의 고통이 요즘 학교에서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고 해서 놀라울 따름이다.

최근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이 근육이 파열되고 내장이 손상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수업시간에 받은 얼차려 때문이라고 한다.

얼차려의 사전적 의미는 군의 기율을 바로잡기 위해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비폭력적 방법으로 육체적인 고통을 주는 일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군대도 아닌 학교에서, 그것도 군사정권 시절도 아닌 민주사회에서 발생했다는 것에 학부모로서 분노를 느낀다.

서울시는 이미 지난 2011년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해 직접체벌은 물론 간접체벌도 금지하고 있다.

아마 그 교사는 군사정권 시절을 겪어봤는지 모르겠지만 피해 학생처럼 꼭 그렇게 얼차려를 해 봤으면 좋겠다.

얼차려의 고통이 단순히 육체적 고통만이 아니라 정신까지 병들게 한다는 것을 알았으면 해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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