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아일랜드는 온통 초록 융단이다. 햇살 맑은 날은 싱그럽고, 바람 불어 비 내리면 몽환적이다. 그 전원에 야생화까지 지천이라 여행기간 내내 눈이 즐거웠다.

아일랜드는 우리와 비슷한 역사를 가진 나라여서 그런가, 정서도 닮아 있는 것 같아 낯설지 않다. 800년을 영국 식민지로 수탈을 당한 역사도, 감자 기근으로 100만 명이 아사했다는 비극도, 고단을 흥으로 승화시키는 살풀이도 우리가 겪은 한과 닮아 있다.

국민소득 4만5천 달러의 경제성장으로 리피강의 기적을 이뤄 낸 부흥도 한강의 기적과 함께 세계 경제역사에 이름을 올리고 있어 자부심이다.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순수했고, 수선스러운 친절이 아닌 속정 깊은 환대가 우리네 시골 인심처럼 따뜻했다.

그들의 정서가 녹아 있는 아일랜드 전통음악은 우리 귀에 어색하지 않아 처음 듣는 곡도 친근해 귀에서 가슴으로 편안하게 흘러들었다.

수도 더블린은 인구 450만 명 중 100만 명 이상이 몰려 있는 곳이다. 번잡스럽기는 해도 경적이나 조바심이 덜해 여유로웠다. 넘치는 관광객으로 펍 골목이나 중심거리 오코넬가는 혼잡했지만 깃발 든 가이드를 쫓아가는 단체관광객보다는 자유로운 발걸음으로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이 나라에서 선망의 눈으로 부러워했던 것이 있다. 문학작품을 대하는 국민 정서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를 4명이나 배출한 저력은 아일랜드 국민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생활 속에서 문학작품을 즐겼다. 수시로 마주치는 제임스 조이스의 동상도, 예이츠의 시를 낭송하는 모습도 특별이 아닌 일상이었다.

아일랜드는 기후만큼은 우리나라처럼 축복이 아니라서 비 내리고 바람 부는 날이 많다. 해가 짧아지는 겨울이면 춥고 바람도 많아 벽난로를 중심으로 실내 활동이 많아지는데, 살아본 사람의 말로는 겨울 동안 뭔가 가슴속에 있는 것들을 쏟아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드는 날씨라 누구나 작가가 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런 필연성이 무수한 작가를 탄생시킨 아일랜드의 또 다른 힘이다.

그들은 문학작품을 유능한 셰프처럼 재료의 순수성을 살리면서 각각 개성 있는 조합으로 맛깔스럽게 차려서 즐기고 있었다.

 작품의 배경이 된 장소에 등장인물로 분장해 깜짝 공연을 즐기기도 하고, 작가의 기념관에서는 은퇴한 어르신들이 자원봉사자로 방문객들에게 작품과 작가를 안내하고 있었다.

우상만이 아닌 흠 있는 인간적 면모를 소개하기도 하고, 작가와의 인연을 사돈의 팔촌까지 동원해 와 억지로 엮는 코믹함도 모두가 작가와 작품에 대한 애정의 표현임이 느껴져 감동받았다.

작품 속 평범한 장소는 자원봉사자의 설명으로 비범한 장소가 돼 창틀이나 문고리 하나까지 숭고해져 의미를 부여받았다.

사실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는 읽은 독자보다 연구하는 학자가 더 많다는 말이 나돌 만큼 두꺼운 분량에 내용도 난해하다. 우리가 방문했던 제임스 조이스 박물관은 예전의 군사용 타워를 그대로 보존해 쓰고 있었다.

자원봉사자인 은발의 할아버지가 「율리시스」의 첫 장면에 나오는 장소가 이곳이라며 창문과 방 내부를 설명해 줬다. 제임스 조이스가 실제 묵었던 방이 어떻게 소설 속 배경으로 재탄생돼 있는지를 들으면서 소설 속 장면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서재에 꽂혀 미라가 된 문학작품은 아일랜드에는 없는 것 같다. 더블린 시민들의 집에는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더블린 사람들」이 반드시 있다고 한다. 그냥 꽂혀 있는 장식용이 아니라 수시로 집어 들어 펴 보는 책이라는 뜻이다.

가족 모임이든 지인 모임이든 그들은 손을 깊숙이 문학작품 속에 집어넣어 등장인물들을 데려와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고 낭송을 즐긴다. 유네스코에서는 이런 점을 높이 사 더블린을 ‘문학의 도시’로 지정했다. 삶의 깊이와 여운을 문학과 함께 나누며 기네스맥주만큼 즐기는 그들이 멋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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