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성신퇴(功成身退)는 공을 세워서 사업을 성취한 뒤에 그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뜻이다. 노자의 도덕경에 ‘공을 이루고도 이에 머무르지 않는다. 대저 머무르지 않기에 공도 떠나지 않는다’는 말에서 유래됐다. 공을 이뤘다고 보상을 바라거나 또 보상을 바라고 공을 이루려 할 때 이미 그것은 더 이상 공이 아니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한나라 유방이 서초패왕 항우를 물리치고 나라를 건국한 데에는 3명의 주요 참모가 있었다. 전쟁에 나가 싸우기만 하면 승리로 이끄는 한신이란 장군이 있었고, 지혜와 책략으로 완벽한 조언을 하고 전략을 세운 정책전문가 장량이 있었다.

또한 후방의 민심을 안정시키고 적시에 보급물자를 조달하는 소하 같은 내정의 전문가가 있었다. 3명은 한나라 개국의 일등 공신이지만 이들의 말로는 달랐다.

 장량은 아무런 공을 주장하지 않고 스스로 모든 자리를 사양하고 낙향해 천수를 누렸다. 그러나 한신과 소하는 자신들의 공을 주장하고 공을 누리려다가 끝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역사에도 그렇지만 민선자치시대에 접어들면서 선거가 끝난 후 당선인 주변에서 공신(功臣)이라는 말이 많이 회자되고 있다. 선거가 끝난 후에는 당선을 위해 공을 세운 소위 공신들이 사람들의 입줄에 오르내리며 자리다툼을 하는 모습을 자주 보곤 한다.

여기에다 일부 단체장은 취임 후 선거 때 공을 세운 공신에 대해 생계 유지 차원에서 관직을 슬그머니 부여하고 있다. 한정된 관직을 차지하지 못하거나 할 수 없는 공신들은 ‘측근’이라는 이름으로 관가 주변에서 인허가나 공사 등 각종 이권에 기웃거리며 행세를 하고 있다.

평택지역에서도 6·4 지방선거가 끝나고 공재광 시장이 취임한 지 50여 일이 지났지만 공성신퇴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어 인상을 찌푸리게 된다.

어찌 보면 자신이 이룬 공을 자랑하고 누리고 싶어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노자는 ‘공을 이뤘으면 몸은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 ‘공성신퇴’의 정신을 강조했다. 한나라 개국 공신들의 불행한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공을 앞세워 무엇인가 챙기려면 불행이 닥친다.

공을 이뤘다고 보상을 바라는 참모들은 등용이 됐다 해도 비리에 젖어든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공신으로 자처하는 인사들은 경제신도시 평택 건설을 위해 불철주야 뛰고 있는 공 시장을 위해 조용히 뒤로 물러나 있는 지혜를 가졌으면 한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