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우리 어벤져스 한 번 됩시다.”

최근 술자리에서 한 후배가 툭 던진 말이다. 제각각 경력 있는 기자들이 모여 한 사무실을 쓰며 각자의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기호일보 경기본사)를 가르킨 것이다. 영화 ‘어벤져스’와 같이 캐릭터는 다양하지만 다함께 힘을 모아 지구를 지켜낸 것처럼 ‘우리도 한 번 잘 해 보자’는 의미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완태, 자기 분야에서 다른 선후배에 뒤지지 않는 광섭이, 자신만의 뚜렷한 스타일이 돋보이는 재학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몫을 다하는 승표, 그리고 근면함과 성실함으로 무장된 진이와 나훔이, 후배들이지만 이들에게 배울 것이 참 많다.

영화 ‘어벤져스’는 겉으로 보기에는 ‘영웅’적 신화다. 자웅을 겨루듯 출중한 전투력을 뽐내고 있는 주인공들의 활약은 재미를 안긴다. 그런데 영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벤져스’는 ‘소통’의 서사다. 개개인의 능력이 아무리 특별하다고 해도 소통 없이 이들은 지구의 적을 막아낼 수 없다. 소통 없이 지구의 적을 막아낼 수 있다면 제작자가 굳이 이들을 몽땅 모아 ‘어벤져스’를 만들었겠는가.

이는 작금의 한국 사회가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도 소통 아닌 ‘불통’으로 멍들고 있다. 능력을 인정받아 대통령이 되고, 광역단체장이 되고, 국회의원이 됐겠지만 잡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들을 뽑아준 국민들의 의중은 아랑곳 않고 엉뚱한 방향으로 정책이 흐르고 있다. 마치 ‘어벤져스’에서 지구의 적이 아닌 어벤져스들끼리 서로 잘났다고 싸우는 모양새다.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건 ‘영웅’의 ‘어벤져스’가 아니라 ‘소통’의 ‘어벤져스’다. 이를 위해서는 뚜렷한 목표 지향점을 정하고, 상대방의 단점을 들춰내기보다는 그 사람의 장점에 눈을 돌려야 하며, 여러 의견들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영화 ‘어벤져스’의 서사적 구조도 이와 같다.

이런 점에서 같은 사무실을 쓰는 ‘우리’는 진정한 ‘어벤져스’가 될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고,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이유는 기밀(?)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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