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법학박사

“판사들을 다시 가르치세요.” “국회의원과 언론, 일반국민들에게도 한국의 노동법과 그 운영현실이 국제기준(예 : ILO의 결사의 자유 보장기준 등)에서 얼마나 멀리 벗어나 있는지를 적극 알리고 일깨우세요. 그것이 학자의 중요한 책무입니다.”

한국노동법학회와 서울시립대 법학연구소가 지난 9월 26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였는데, 여기에 참석한 선진국의 저명한 노동법학자들이 우리나라의 노동법학자들에게 충고한 사항이다.

학술대회는 ‘쟁의행위와 책임’을 주제로 열렸는데, 독일·프랑스·영국·일본·한국의 노동법학자들이 각기 자국의 법제를 발표하고 열띤 토론을 진행하였다. 이 자리에서 외국의 학자들은 우리나라의 법제와 그 운영현실에 대해 큰 관심을 내보였다.

특히 파업과 관련하여 노동조합의 간부와 조합원을 형사처벌하는 일(업무방해죄의 적용 등), 파업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에 대해 노동조합과 근로자에게 민사책임을 묻는 일(손해배상책임 추궁), 교사들의 노동조합 활동을 제약하는 일 등의 한국의 최근 법집행 현실에 대해 “헌법상 노동3권이 보장되는 국가 그리고 FTA를 체결한 국가에서 발생되는 일이라고 믿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선진국에서는 노사관계를 “사회적 파트너 관계”로 이해하기 때문에 설혹 노사간에 갈등과 분쟁이 생기더라도 이를 협상을 통해 조속하고도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노동조합과 근로자를 상대로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법적 책임을 묻게 되면 분쟁이 격화되고 장기화됨에 따라 소송비용 부담 등 유·무형의 막중한 피해를 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란다. 특히 언론과 대중들이 ‘여론비판’을 쏟아내게 되면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소탐대실(小貪大失)’할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에 법적 책임 추궁을 고려하지 않고 ‘타협과 관용’으로 해결하고자 한다고 한다.

그밖에 이 자리에서 소개된 외국의 노동법 운영사례는 다음과 같다. 독일에는 우리나라의 ‘필수유지업무’에 해당하는 개념이 없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파업을 이유로 노동조합 간부나 근로자에게 유죄를 선고한 법원의 판결이 없으며, 형법상 강요죄나 공갈죄 등의 적용여지가 있을 수 있으나 실제 처벌한 사례는 없다고 한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파업권을 개인의 권리로 보고 매우 폭넓게 보장하며, 파업에 대한 형사처벌규정은 1864년 폐지됐다고 한다. 영국의 경우 쟁의행위에 대한 형사법상 책임은 1875년에 폐지됐고, 노동조합의 민사책임한도가 정해져 있는데(예 : 조합원수 5천명 이하는 1만파운드(1천7백만원) 이하) 실제 청구사례는 거의 없다고 한다. 일본의 경우 파업권이 인정되는 범위가 매우 넓고,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묻는 일도 거의 없다고 한다.

서양의 학자들은 같은 동양권 국가인 한국과 일본의 노동법제와 그 운영현실상의 큰 차이에 주목하면서 그 이유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에 대해 강한 의문을 표시하였다.

즉, “노동법상 형벌규정이 적고 민·형사상책임을 거의 묻지 않는 일본에서는 파업발생 건수가 매우 적은 데 반하여, 형벌규정이 많고 민·형사상책임을 엄하게 묻는 한국에서는 오히려 파업발생 건수가 매우 많은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 우리나라 학자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역사·문화적 배경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라는 식의 짧은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서양학자들의 머릿 속에 “한국인들은 근로자를 ‘사회적 파트너’가 아니라 ‘대결과 억압의 대상’으로 보는 것인가?” 또는 “한국인들은 타협과 양보를 통한 분쟁해결이 민·형사상 법적책임 추궁으로 갈등을 심화·지속하는 것보다 저비용의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미개한’ 국민들인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대로 가면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완전히 ‘후진국 취급’을 받겠구나하는 우려가 절로 들었다. 우리나라의 노동법제와 운영현실을 조속히 개선하여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입법부·행정부·사법부가 모두 나서 범국가적 차원의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그 계기를 만드는 일에 학자와 언론이 앞장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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