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전부터 “정부 돈은 눈먼 돈”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 일반에 널리 퍼져 있다. 정부로부터 보상금을 더 많이 받아내기 위해 급히 나무를 심거나 날림으로 건축물을 짓는 등의 부당 사례가 자주 뉴스에 보도된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쓰여져야 할 각종 복지예산이 허술한 관리로 줄줄 새기도 한다.

 또한 농업인을 지원하기 위한 자금이 엉뚱한 사람들에게 흘러가기도 한다. 이러한 사례에서 보듯 공공재정 운용과 관련된 도덕적 해이와 불법적 행태가 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지난 한 해 동안 사정기관이 적발한 국고보조금 비리 액수만 1천700억 원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상태다.

최근 정부가 공공재정의 관리 강화를 위해 새로운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부정한 방법으로 국가 재정을 축낼 경우 정부가 해당 금액을 모두 환수하는 한편, 부정하게 얻은 이익의 최대 5배를 부가금으로 받아내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추진된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가 부과한 환수·부가금을 내지 않으면 부동산 등 보유재산을 압류한 뒤 공매 처분하고, 제보자에게는 최대 20억 원의 보상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도입될 예정이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공공재정 허위·부정청구 등 방지법’(이른바 재정환수법)이 이러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이 법은 미국의 링컨 대통령 시절인 1863년 남북전쟁 당시 연방보급품 구매 과정에서 군수품 업자들의 사기행위가 만연하자 이를 처벌할 목적으로 마련된 ‘부정청구금지법(False Claim Act, 일명 링컨법)’과 같은 취지를 갖고 있다고 해 ‘한국판 링컨법’으로 불리기도 한다. 매우 적절한 입법 추진이라고 생각되며, 오히려 만시지탄의 느낌이 있다고 하겠다.

재정환수법에는 나라 곳간인 공공재정을 ‘쌈짓돈’처럼 주무르는 사실상의 모든 부정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말하자면 보건, 복지, 고용, 연구개발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정부 돈을 사용할 때 허위·부정 청구하는 방식으로 정부 재정을 축내거나 부당이득을 취하는 행위를 원천적으로 막기 위한 목적이다.

이 법에 의한 제재 대상에는 중앙행정기관(43개), 지방자치단체(244곳), 공기업 등 공공기관(303곳)은 물론이고 국가 재정을 받아 쓰는 개인·법인·단체 등이 모두 포함된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11월 4일 공개토론회를 열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 뒤 법제 심사를 마치고 12월 초 국회에 법안을 제출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부디 입법이 순조롭게 이뤄지기를 바란다.

그런데 공공재정의 효과적인 관리 강화를 위해서는 악덕한 국민들에 의한 공공재정 누수도 차단돼야 하겠지만 공무원들의 재정손실 행위에 대한 제재 및 변상도 아울러 강화돼야 할 것이라고 본다.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이상민(새정치·대전 유성)의원이 감사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감사원의 변상판정 집행률이 10건 중 4건도 채 안 되고, 시정요구 집행률 역시 매우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변상판정’은 정부부처와 기관의 담당직원이 업무 수행 과정에서 법령이나 규정 위반으로 기관·단체에 손해를 미쳤을 때 내려지는 처분을 말하고, ‘시정요구’는 행정과 예산을 잘못 집행한 기관에 대해 시정을 요구하는 것을 말한다.

감사원은 2012년부터 올해 6월 말까지 7개 부처에 14억2천만 원의 변상판정을 요구했지만 이 중 4억8천만 원만 집행된 것으로 집계돼 미집행률이 61.9%에 달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8억8천만 원 전액을 집행하지 않았고, 문화체육관광부는 6천100만 원의 변상금 중 2.7%만 집행하는 데 불과했다.

또한 감사원의 시정요구는 2년 6개월 동안 5천79억 원(636건)에 달했지만 3천302억 원(372건)만 집행돼 미집행률이 35%에 달했다.

‘피 같은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공공재정의 관리를 한층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재정 운용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해치거나 탈세행위를 일삼는 사람들을 다른 법질서 위반행위보다 훨씬 더 강력히 엄단해야 한다.

이러한 ‘세금도둑’들은 국가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의무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므로 국가가 부여하는 각종 혜택도 박탈하는 것이 마땅하다. 한편, 정부의 재정 지원이 당초 지원 대상으로 상정한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 관련 법령과 운영 실태를 총체적으로 점검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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