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가장 어두운 저녁에 내는 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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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가장 어두운 저녁에 내는 답장
김윤식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객원논설위원
  • 기호일보
  • 승인 2014.12.10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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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식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지난달 그믐 무렵 한학(漢學)을 하는 후배에게서 뜻밖의 서찰을 받았다. 여러 해 격해 있었는데 잊지 않고 내게 편지를 보낸 것이다. 공자가 멀리에 있는 친구의 내방을 다함없는 즐거움으로 말했지만 이렇게 편지를 받는 것도 여간한 기쁨이 아니었다. 요즘 세상에 전화 한 통화면 족할 것을….

이것은 분명 그가 몇십 년 한학을 몸으로 살아온 넓은 품이려니, 따를 수 없는 그의 헌헌한 금도(襟度)려니…. 아무튼 도타운 우정이 그저 고마울 따름으로 서둘러 피봉을 뜯고 낯익은 그의 육필을 찬찬히 읽었다.

먼저 편지의 첫 내용은 저물어 가는 한 해에 즈음한 문안을 적고 있었고, 곁들여 내 졸시편(拙詩篇)에 대해 값진 진화(進化)를 기다린다는 덕담도 있었다. 그리고 말미에는 다른 누구에게 들었노라며 정성스레 적은 내 근황에 대한 다함없는 위로가 차지하고 있었다.

몇 살이나마 위의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중에도 큰 감동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그의 편지에 들어 있는 구절이었다. 원문을 쓰지 않고 지나가듯 말한 논어의 한 내용! 그러면서 형은 곰곰이 생각해 보라! 이것이 전부였다. 그가 어째서 내게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른다. 내게 공부를 권면하려는 뜻이라고 이해해야 할지, 세상을 잘 살피라는 의미였는지….

거두절미하고 그것은 공자께서 치고 있던 ‘경쇠’ 이야기였다. 사무실에서 돌아와 꼬박 이틀 동안 논어를 뒤져 헌문(憲問)편에서 찾아낸 원문 구절은 이러했다.

子擊磬於衛(자격경어위)러시니 有荷簣而過孔氏之門者曰(유하궤이공씨지문자왈), 有心哉(유심재)擊磬乎(격경호)旣而曰(기이왈), 鄙哉(비재)硜硜乎(갱갱호)莫己知也(막기지야)이어든 斯己而已矣(사기이이의)深則厲(심즉려)淺則揭(천즉게)니라 子曰(자왈), 果哉(과재)末之難矣(말지난의)니라.

그야말로 천학(淺學)이니 선인의 해설서를 어찌 빌지 않을 수 있으랴. 다행히 또 한 사람 후배 중에 논어에는 일가(一家)가 있어 그의 도움을 받았다. 그의 설명은 이랬다. 공자가 위나라에 머물며 경쇠를 치고 있었다. 이때 누가 삼태기를 지고 공자의 집 앞을 지나다가 “마음이 담겨 있구나. 저 경쇠 소리에는.” 잠시 있다가 말하기를 “천박하구나, 고집도 세고.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데도 자기만 고집하는구나. 물이 깊으면 옷을 입고 건너고 얕으면 걷고 건너면 될 것을.” 공자가 말하기를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야 세상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느냐.”

여기까지가 원문의 해석이다. 그리고는 그의 해설이 이어졌다. “삼태기를 진 사람 또한 깊은 학식을 지니고도 세상을 등지고 사는 은자인지라 공자의 경쇠 소리만 갖고도 공자의 마음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 충고를 한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아마 그 삼태기를 짊어진 사람의 말을 수긍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공자에게 이 세상은 그냥 잊고 살 그런 대상이 아니었다. 세상은 너무 어지러웠고, 공자는 그것을 개혁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는 굳은 신념 속에 일생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 글을 몇 번 고쳐 읽어도 편지의 진의를 알 수 없었다. 무엇을 곰곰이 생각해 보란 말인가. 그리고 어째서 후배는 이 이야기를 그저 지나가듯 했던가. 그는 과연 삼태기를 쓴 ‘어떤 사람’을 이야기하려 했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공자의 뜻’을 더 강조하려 했던 것이었을까.

두 주일 가까이 골똘히 생각한 끝에 비로소 조금은 윤곽이 잡히는 것 같았다. 완벽히 좇을 수는 없어도 삼태기를 쓴 사람을 따르든 공자의 태도를 흉내 내든….

‘한 해의 가장 어두운 저녁’은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의 한 구절이다. 12월이 되면 문득 생각나는 시다. 참 어둡고 깊은 계절을 노래했다. 그러나 지금 마음은 결코 어둡지 않다.

물이 깊으면 옷 입은 채, 얕으면 걷고 가면 될 것이다. 아니, 그렇게 갈 수 있다면 세상 아무 어려움이 없으리라던 공자처럼 그저 탄식을 해도 그만일 일이다.

이 사연을 ‘몇 사람 자신이 진짜 인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그러면서 이 글은 또 그 품 넓은 후배를 조만간 꼭 한 번 만나 보고 싶다는, 그런 내면의 답장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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