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토막살인사건 피의자 박춘봉의 최초 입국 시기가 확인되지 않으면서 국내 출입국 관리 시스템의 허점이 드러났다고 한다.

 동거녀를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박춘봉이 타인 명의로 발급받은 ‘위명 여권’을 이용해 한국을 들락날락한 것이다.

 여권 자체를 위조해 만든 위조 여권과 달리 위명 여권은 중국 정부로부터 발급받은 정식 여권이다. 차명 계좌처럼 명의만 다를 뿐이다. 지난 2012년부터 정부가 외국인 출입국 심사를 대폭 강화했지만 ‘위명 여권자’까지 완벽하게 걸러내지는 못하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박춘봉은 22년 전부터 한국을 수차례 왕래했다. 아직 박 씨가 처음 국내에 들어온 시기와 방법은 밝혀지지 않았다. 1992년 9월 자신의 여권으로 출국한 것이 공식적으로 남은 최초의 기록이다.

 이후 1996년 3월 부산항을 통해 밀입국했다가 불법체류 사실이 적발돼 그해 11월 강제출국된 것으로 확인됐다.

박 씨는 2년 뒤인 1998년 12월 이모 씨의 여권을 이용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타인 명의로 발급받은 위명 여권을 들고 공항검색대를 지났지만 무사히 통과했다. 5년 뒤인 2003년에는 중국 여권을 위조한 혐의로 검거돼 같은 해 7월 또다시 강제추방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박 씨는 끊임없이 한국 입국을 노려 2006년에는 자신의 여권에 적힌 출생연도를 바꿔 재입국을 시도했지만 출입국 심사 과정에서 적발돼 발길을 돌려야 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입국이 불가능해진 박은 또 다시 타인의 여권을 활용했다.

결국 2008년 12월 박철이라는 사람의 여권으로 단기방문 C-3비자를 받아 인천공항을 통해 재입국하는 데 성공했다. 위명 여권을 이용해 두 번이나 불법 입국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위명 여권을 100%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위조한 여권은 위조 여부를 밝힐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치를 통해 비교적 쉽게 식별해 낼 수 있지만 위명 여권은 중국 정부가 발행한 정식 여권이기 때문에 여권 자체만 봐서는 진위 여부를 알아차리기 힘들다.

결국 중국 정부까지 속여 발급받은 합법적인 여권이 우리나라에서 불법적인 목적으로 쓰이는 것이다. 위명 여권을 신청하는 것은 해당 국가의 여권 발급기관 입장에서는 불법이지만 적발되지 않고 발급만 되면 다른 나라에서는 정상 여권으로 간주된다.

 이에 여전히 단속망을 피해가는 위명 여권자들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이번 사건을 거울삼아 정부와 출입국 당국은 전면적으로 출입국 관리 시스템을 재점검해 개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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