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약국에서 겪은 일입니다. 한 아이엄마가 약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두세 살쯤 돼 보이는 자신의 아이에게는 화사한 미소로 얼굴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눴습니다. 반면 그 옆에 앉아 있던 자기 남편에게는 시종일관 무표정하게 대꾸를 하더군요. 그날만 그랬는지 속사정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남편을 마치 ‘소 닭 보듯’하던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특별히 그렇게 할 이유가 없는데도 누군가가 언제나 자신에게 표정 없는 얼굴로 싸늘하게 대한다면 어떨까요? ‘표정이 없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듣는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대중이 모인 자리에서 좀 웃으며 시작하자는 제안을 많이 하게 됩니다. 웃음기 싹 가신 얼굴로 말 없이 앉아 있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사람은 아마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농을 좀 보탠다면 하도 미소 없이 살아와서 ‘웃는 게 더 무서운 표정인’ 사람들도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요즘 겨울 프로스포츠 시즌이 한창입니다. 경기가 있는 날 중계방송사에서는 미리 카메라를 준비해 놓고 경기를 위해 경기장에 도착하는 선수단이 들어오는 모습부터 선수들이 내리는 모습까지 촬영을 합니다.

그리고 그 화면은 중계방송의 오프닝으로 쓰거나 경기 시작할 때까지 자료화면으로 씁니다. 재미있는 것은 선수들이 버스에서 내릴 때 카메라를 보고 반응하는 표정입니다. 몇 번을 봐도, 또 어느 팀을 봐도 비슷한 양상이 눈에 띕니다.

선수들은 대개 무표정한 얼굴로 카메라를 응시하거나 아니면 아예 눈길도 주지 않습니다. 경기를 목전에 두고 있다 보니 당연히 긴장도 될 것이고 마음의 자세를 가다듬느라고 일부러 표정 관리를 하는 측면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방송을 보는 사람들은 팬들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쉽습니다. 팬들을 향해 살짝이라도 지어주는 미소가 필요해 보였습니다. 반면에 같은 팀의 외국인 용병 선수들은 카메라를 향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심지어는 스스럼없이 개구진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있더군요.

예전에는 연배가 적은 사람이 윗사람을 보고 웃음을 지으면 야단맞곤 했습니다. 실없이 왜 웃느냐며 타박받기 일쑤였습니다. ‘나 홀로 집에’라는 영화에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주인공인 어린이가 뉴욕 플라자호텔 맞은편의 한 공원에서 소위 ‘비둘기 아줌마’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는 무표정한 아줌마의 표정에 기겁을 하고 맙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아줌마는 좋은 분이었습니다. 상대방의 표정으로 고정관념을 갖게 된 경우입니다.

소통(Communication)에서 ‘표정’이 하는 역할이 생각보다 큽니다. 메시지 자체를 뜻하는 언어적 요소보다 표정, 제스처 등의 비언어적 요소가 소통에 끼치는 영향이 더 크다는 것이 여러 학자들의 연구 결과입니다.

 여러 사람이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 그 중 누구든 한 명에게 문의를 하고 도움을 청해야 하는 상황을 그려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에게 가시겠습니까? 아마도 십중팔구는 무표정한 사람이나 인상 쓰고 있는 사람보다는 상대적으로 더 밝은 표정인 사람에게 말을 걸려고 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성형외과나 다이어트 광고를 접해 보셨을 것입니다. 주로 BEFORE와 AFTER 사진을 비교합니다. 수술 혹은 시술 전의 모습과 후의 모습을 비교해 보여 주는 것입니다.

사진 속에서 눈은 가렸어도 표정은 알 수 있습니다. BEFORE 사진들은 하나같이 무표정, AFTER 사진은 약속이나 한 듯이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보는 사람들은 당연히 AFTER 사진에 호감을 더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미소의 힘입니다. 광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일 것입니다.

전기 자극 실험으로 밝혀진 내용입니다. 소위 ‘영업용 웃음’이 아닌 진짜 웃음을 지을 때에만 눈 주위 근육과 입 주위 근육이 함께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발견한 프랑스의 생리학자 듀센의 이름을 따서 진짜 웃음을 ‘듀센 미소(Duchenne smile)’라고 부릅니다.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입니다. 서양에도 똑같은 속담이 있습니다. ‘If you laugh, blessings will come your way.’ 듀센 미소가 아니더라도 좋습니다. 사교적 미소일지라도 일단 시작해 보십시오. 인위적인 웃음일지라도 찡그린 얼굴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환한 표정만큼이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밝아질 것입니다. 기억해 두십시오. 표정도 훌륭한 소통의 도구라는 사실을. 오늘의 과제입니다. 나의 평소 표정은 어떠한지 되돌아보고 하루 몇 분씩이라도 미소 짓는 연습을 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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