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은 입춘이었다. 새봄을 맞이한다는 뜻으로, 옛부터 민간에서는 새로운 글귀를 짓거나 옛사람의 아름다운 글귀를 따다가 봄을 축하하는 글을 써서 집안의 기둥이나 대문 등에 두루 붙였다고 하며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많이 쓰이는 글귀는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라고 하는데, 이는 “입춘에는 크게 좋은 일이 있고, 새해가 시작됨에 경사스러운 일이 많기를 바란다”는 뜻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건양’은 19세기 말 즉위 33년인 1896년부터 다음 해 7월까지 쓰인 고종황제의 연호로서 ‘건양다경’은 당시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뜻에서 집집마다 써 붙인 글귀라고 전해오고 있다.

입춘은 대한과 우수 사이에 속한 24절기 중 한 해의 첫 번째 절기로, 양력으로는 2월 4일께가 된다고 한다.

근래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따뜻한 겨울을 보내다가 금년 겨울은 유난히 추웠고 눈 또한 자주 내려 입춘이 새롭게 느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선조들은 이날 각자 맡은 바에 따라 아홉 번씩 일을 되풀이해야 한 해 동안 복을 많이 받고, 그렇지 않으면 액을 받는다고 믿어 왔다고 한다.

그래서 서당에 다니는 아이는 천자문을 아홉 번 읽었고, 나무꾼은 아홉 짐의 나무를 했으며, 노인은 아홉 발의 새끼를 꼬았고, 아낙들은 빨래 아홉 가지를, 길쌈을 해도 아홉 바디를 삼았으며, 실을 감더라도 아홉 꾸리를 감았다고 한다.

이렇듯 우리 조상들은 ‘9’라는 숫자를 유난히도 좋은 숫자로 믿고 있었으며 가난해도 부지런하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교훈으로 가르쳐 왔던 것이다.

예를 들면 밤중에 몰래 냇물에 나가 마을 사람들이 건너다닐 징검다리를 놓는다든지, 거친 길을 곱게 다듬어 놓는다든지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일을 입춘 전날 밤에 실천해야 일 년 내내 액운을 면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농사의 기준이 되는 24절기의 첫 번째이기 때문에 보리뿌리를 뽑아 농사가 흉년일지 풍년일지를 가려보는 농사점을 치기도 했으며, 오곡의 씨앗을 솥에 넣고 볶아서 맨 먼저 솥 밖으로 튀어나오는 곡식이 그해 풍작이 된다는 믿음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이날에는 오신채라고 하는 음식을 즐겨 먹었다고 하는데 오신채는 다섯 가지 매운 맛이 나는 모둠 나물로서 파, 마늘, 자총이, 달래, 평지(유채), 부추, 무릇(파) 그리고 미나리의 새로 돋아난 새순 중 노랗고 붉고 파랗고 검고 하얀, 즉 우리 민족이 좋아하는 오방색을 골라 무쳤으며 노란 색의 나물을 가운데에 놓고 동서남북에 청, 적, 흑, 백의 사방색이 나는 나물을 놓았으며, 임금이 굳이 오신채를 진상받아 중신들에게 골고루 나눠 먹게 한 깊은 뜻에서 사색당쟁을 타파하라는 화합의 의미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삶에는 다섯 가지 괴로움이 따르는 바, 다섯 가지 매운 오신채를 먹음으로써 그것을 극복하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고 한다.

입춘을 전후해 가장 큰 일은 장을 담그는 일로써 입춘 전 아직 추위가 덜 풀린 이른 봄에 담가야 소금이 덜 들어 삼삼한 장맛을 낼 수 있다고 한다.

메주는 늦가을(음력 10월)에 쑤어 겨우내 띄운 것이 가장 맛있고, 장은 팔진미의 으뜸이어서 장이 없으면 모든 음식이 제 맛을 낼 수가 없음은 당연지사 아니겠는가.

봄의 시작이자 1년을 24절기로 나누는 첫 번째 절기인 입춘, 우리는 보통 24절기를 음력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태양력이라고 한다. 춘분을 기점으로 24등분해 계절을 자세히 나눈 것을 절기라고 하는데, 보통 농사와 계절을 알려 주는 기능으로 활용되지만 지금은 사주팔자를 보는 데 주로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오래전 신문지면을 통해 ‘가장 추운 시기에 입춘을 둔 것은 엄혹한 시기에 내일을 준비하라는 우리 조상의 지혜가 담겨 있다’고 하는 칼럼을 읽은 적 있었다.

그때는 그럴듯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도 했었지만, 근자에 알고 보니 절기의 이름은 우리나라와 기후가 다른 중국의 화북지방을 기준으로 붙인 것이라고 한다.

 오늘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무슨 데이(Day)니 하는 날이나 개인적인 기념일엔 관심이 많지만 우리 생활과 밀접한 절기에는 무관심한 듯하다. 하지만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옛 사람들의 삶도 한 번쯤 돌아보면서 잠시 멈춰서 한숨 돌리는 여유도 가히 나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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