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위기에 청사 신축은 도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재작년 말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하며 일갈했던 내용이다. 당시 야당이 주도했던 도의회는 청사 설계비 20억 원을 자체 편성하며 초강수로 맞섰지만, 김 전 지사는 끝내 예산을 집행하지 않고 퇴임했다.

그런데 작년에 새로이 당선된 같은 당 소속 남경필 지사는 도민과의 약속이라며 철회했던 청사 이전을 재개한다. 이번에는 (여전히 야당이 다수당인)도의회 상당수 의원이 입장을 바꾸며 현 청사에 잔류하려 한다는 소식이다.

한마디로 교체된 도지사와 의회의 당 소속은 그대로인데 명분은 정반대로 바뀌는 형국이다. 정상적인 도정 시스템이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각각의 명분은 그 자체로 흠결이 없다.

누가 됐든 한쪽은 혈세 낭비를, 반대쪽은 약속 이행을 주장하는 것이다. 정작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광교와 무관한 1천240만 도민 의견 수렴없이 이전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광교신도시는 애초에 도청 이전을 전제로 개발이 시작된 만큼 약속을 이행하는 게 순리에 맞다. 하지만 솔직히 안 옮겨도 크게 상관은 없다.

도청에서 신청사 부지 간 거리가 직선으로 4.5㎞에 불과해서 출발지의 마이너스 효과와 도착지의 플러스 효과가 수원이라는 경제권 내에서 즉시 상쇄돼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생산·고용·부가가치 유발효과가 급격히 올라갈 여지도 없고, 소외지역에 대한 균형발전 취지도 살리기 힘들다. 더군다나 지금은 국가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다. 이러한 때 파급효과도 크지 않은 곳에 막대한 혈세를 퍼붓는 게 과연 올바른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재원 조달은 더욱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도에서 계획하는 ‘선 지방채 발행, 후 공유재산 매각’을 실행할 경우 이자만 400억 원 이상 발생하고, 매각 또한 매입자의 재원 부족과 기타 규제로 인해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보도다.

청사 이전에 따른 정치·경제·사회적 파급효과는 어떠할지, 실현 가능한 재원 조달 방법에는 무엇이 있는지 치밀하게 재검토하기 바란다. 그런 후 권역별 주민공청회를 거쳐 이전 여부를 결정해야 하겠다.

도청 공무원들의 안락한 업무환경과 광교 입주민의 이익을 위해 4천억 원 이상의 혈세(그것도 빚으로)를 투입하려는 마당에 준비 과정마저 주먹구구식이라면 이는 나머지 99.5% 이상 경기도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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