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지인 경기도박물관 학예연구사

 2015년은 ‘경기 민속 문화의 해’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잊혀 가는 우리 민속 문화를 보존하고 관리하기 위해 2007년부터 지역 민속 문화의 해를 선포하고 각 광역자치단체와 공동으로 집중적인 연구를 해 나가고 있다.

 올해는 전국 팔도를 돌았던 사업이 마무리되는 해로, 경기도가 그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주인공이다. 급격한 근대화와 세계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수많은 우리 전통은 그 설 곳을 잃게 됐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핵가족 사회를 맞으면서 할머니의 할머니에게서 이어진 전통 계승의 맥은 점차 희미해져 갔다.

‘쌍륙(雙六)’. 이 낯선 이름의 전통놀이 역시 그러한 흐름을 거스를 수 없었던 우리의 민속 중 하나다.

이틀 뒤면 우리는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날을 맞이한다. 설날이 되면 조상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민속놀이를 즐겼는데, 쌍륙 놀이 역시 이때 즐겼던 놀이다. 쌍륙은 두 사람 또는 두 편으로 나눠 2개의 주사위를 동시에 던져 나온 숫자만큼 말(馬)을 옮기며 승부를 가르는 방식의 놀이다.

놀이 세트는 말판이 되는 쌍륙판과 32개 또는 30개의 말, 2개의 정육면체 주사위로 구성된다. 자기편의 안쪽 구역(안육)에 모두 집을 짓거나 자신의 말을 말판에서 먼저 모두 빼내면 승리한다.

주사위를 사용한 놀이의 기원은 기원전 3천 년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역 역시 아시아·유럽·아메리카·아프리카 등 전세계에 걸쳐 나타나는데, 가장 대표적인 놀이는 백개먼(Backgammon)이다. 쌍륙 역시 백개먼 놀이의 한 종류라고 볼 수 있다.

쌍륙 놀이는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삼국시대 무렵 한반도에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도 쌍륙 놀이를 즐겼음은 ‘한가로이 옥국(玉局: 쌍륙판)을 지켜보며 쌍륙을 겨룬다(閒呼玉局爭雙六)’라는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시구에서도 드러난다. 쌍륙 놀이는 조선시대에 크게 성행했는데 이는 「동국이상국집」, 「조선왕조실록」, 「성호사설」 등의 다양한 기록에서 확인된다.

 놀이 장면은 신윤복(申潤福, 1758~?)의 ‘혜원풍속도첩’과 김준근(金俊根, ?~?)의 ‘기산풍속화첩’ 등 풍속화로 나타나며, 19세기 말 조선에 들어온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서 기록되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시대까지도 활발하던 쌍륙 놀이는 현대에 와서 자취가 거의 사라졌다. 오늘날 백개먼으로 불리는 서양의 쌍륙 놀이가 온라인 게임으로까지 발전한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이에 경기도박물관에서는 우리의 명절 민속을 재조명하자는 취지로 조선시대 사용된 쌍륙을 직접 만나 볼 기회를 마련했다. 박물관에서는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을 기념하며 ‘이달의 유물’을 발표하는데, 2월의 주인공으로 ‘쌍륙’을 선정했다.

 이번에 공개되는 쌍륙은 용인이씨 부사공파 판관공 종손 이태한 선생께서 보관해 오던 것으로, 19세기 말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용인이씨는 고려의 건국공신 중 한 명인 이길권(李吉卷, 904~1008)을 시조로 하며 현재까지 1천100여 년간 지속된 경기도의 유서 깊은 명문가이다.

용인이씨 문중은 2011년 쌍륙을 포함해 소중히 대물림해 오던 유물 112점을 경기도박물관에 기증했다. 분실돼 후대에 다시 제작한 말을 포함, 총 32개의 말과 2개의 주사위, 보관용 주머니 2개로 구성돼 있다.

말은 나무를 깎아 평균 높이 7.5㎝에 지름 3.1㎝의 크기로 만들었으며, 옻칠을 한 후 붉은 색과 노란 색이 각각 칠해져 있다.

흥미로운 점은 말의 바닥 면에 먹으로 당시 기생의 이름이 쓰여 있다는 것인데, 문중에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19세기 조상 한 분이 지방관리로 파견됐던 당시 실제 기생들을 두고 쌍륙을 둔 것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이젠 이름조차 생소한 우리 민속놀이 쌍륙. 이번 설 연휴에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쌍륙을 비롯해 다양한 우리 민속놀이를 즐기며 소중한 우리의 전통문화를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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