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인간의 마음을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경지로 몰아가는 연금술사란 생각이 든다. 정년퇴직한 공직자가 산하기관의 임원으로 발탁됐을 때 “운이 좋았나 보네요!”라는 말보다 “현직에 있을 때 열심히 일하시더니 정년 후에도 놓아주지 않고 귀히 쓰는 군요!”란 축하인사가 더 돋보인다.

“어떤 멋진 젊은이가 씩씩하게 오는가 했더니 바로 선배님이시군요!”라는 인사는 윗사람에게 비싼 음식을 대접한 것보다 더 큰 호감을 살 수 있다. “당신은 얼굴은 못생겼어도 마음씨는 착해”라는 말보다 “당신은 마음씨가 착하니 얼굴도 예뻐 보여”라는 말은 깊은 사랑과 신뢰감을 안겨 준다.

어느 식당 종업원은 손님의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가 하루의 피로를 잊게 해 준다고 털어놓았다. 이처럼 말 한마디는 상대방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있고, 가슴에 깊은 상처를 안겨 줄 수도 있다.

요즘 한 정치인의 막말 한마디가 풍파를 일으키고 있다. 지금까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만 찾았던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신임 대표가 지난 9일 야당 대표로는 처음으로 전직 두 대통령의 묘역을 찾아 고개를 숙였다.

건국의 상징인 이승만 전 대통령과 가난한 국가를 개발도상국 대열로 이끈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잠들어 있는 국립현충원이다. 비록 당내의 반대 세력 때문에 문희상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우윤근 원내대표만 동행했지만 국민통합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그의 정치철학에 국민들은 역시 대권 주자답다며 경외심을 표했다.

그러나 새정치연합 정청래 최고위원은 독일이 유대인 학살을 사과했다고 해서 유대인들이 히틀러 묘소를 참배할 이유가 없고, 또한 일본이 과거사를 사과한다고 야스쿠니에 참배하고 천황에 절할 이유는 없다고 했다. 도대체 누가 히틀러이고 천황이며 유대인은 누구란 말인가.

그는 황교안 법무장관의 이름을 인용해 “황당하고, 교활한, 안목을 가졌다”는 원색적 표현으로 인신공격을 펴기도 했다. TV 화면에 비친 그의 모습을 보는 순간 차라리 노란색 세월호 추모 리본이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여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낸 천정배 전 의원도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인간 존엄을 짓밟은 독재자들과의 화해는 잘못된 역사가 청산되고 바로 세워진다는 전제 위에서 있을 수 있다”며 문 대표의 행보를 비판했다.

반면에 김부겸 전 의원은 정 의원의 막말에 대해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도를 지나친 발언이라며 상대편 가슴에 대못을 박듯 후벼 파야만 선명성이 드러나는 건 아니라고 꼬집었다.

또한 이런 막말과 편협한 정치를 해 왔기 때문에 민주당이 지난 10여 년간 싸가지 없는 집단으로 매도돼 국민이 냉정하게 등을 돌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총선과 대선을 염두에 둔다면 나라를 책임지려는 자세를 보이고, 증오보다 예의를 갖추며, 최고위원으로서의 언어 사용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그의 조언은 대다수 국민들의 뜻이기도 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거론할 때마다 국민들은 고문 후유증으로 지팡이를 짚어야 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악몽처럼 떠올린다.

하지만 박정희 독재정권의 최대 피해자라 할 수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2년 야당 대선 후보와 1997년 당선인 신분 당시 두 차례에 걸쳐 이승만·박정희 묘역을 참배했다.

더 나아가 박정희 생가도 방문하고, 박정희기념관 건립을 지원하기도 했다. 새정치연합 공동대표를 지낸 안철수 의원도 대선 당시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태준 전 총리의 묘역을 참배했다. 이때는 왜 시비를 걸지 않았으며, 종북세력이 체제가 다른 북한에서 김일성·김정일 묘소를 참배하고 방명록까지 남겼을 땐 왜 침묵하고 있었는가.

우리의 정치 역사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자취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역대 지도자마다의 장단점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

과거 크고 작은 선거 때마다 소수 특정인의 말실수로 고배를 마셨던 악몽을 반면교사로 삼지 않는다면 새정치연합의 미래는 기대할 수 없다. 병종구입(病從口入) 화종구출(禍從口出), 병은 입으로 들어가고 화는 입으로부터 나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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