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철학’에 관심이 많아 이런저런 개론의 책들을 들춰 보곤 했다. 동양철학, 서양철학 가리지 않았고 덕분에 고민과 반성도 많이 했다.

이 가운데 재미있는 논리를 담은 한 학파에 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중국 철학 내 여러 학파 중 명가(名家)학파에 관한 이야기다.

전제할 사항은 지금 머릿속 잔상에서 그 내용이 확실치는 않다. 또한 그 학파의 정론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왠지 작금의 우리 사회와 닮았다.

책은 명가학파에 대해 일화를 들며 소개했다.

내용인즉, 한 마을에서 실종사건이 발생했다. 소위 ‘대감집’ 어른이 없어졌는데, 얼마 후 강에 빠져 죽은 시신을 그 마을에서 가난하게 살던 한 남자가 우연히 수습한다.

이 소식을 들은 대감집은 그를 찾아갔고 시신의 소유권과 보상 문제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의견이 평행선을 달리자 시신을 수습한 남자가 그 마을의 명가학파 한 학자를 찾아갔다.

고민을 듣던 학자는 그 남자에게 “그냥 기다리면 됩니다. 어차피 그 대감집은 예와 법을 중시하는 집안입니다. 시신이 더 썩기 전, 상을 치르기 위해서라도 더 높은 값을 들고 다시 찾아올 겁니다.”

이번에는 대감집이 학자를 찾아갔다. 학자는 “그냥 기다리면 됩니다. 그 남자는 시신이 필요없고, 시신은 시간이 지나면 썩게 마련입니다. 집에서 썩은 냄새가 진동하기 전에 흥정하자고 찾아올 겁니다.”

언뜻 보면 궤변일 수 있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물이 반이나 남았냐, 반밖에 안 남았냐’는 식의 시각과 비슷하다. ‘시신은 썩는다’는 팩트 앞에 입장의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무상급식 논란이 한창이고, 김영란법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옳고 그름은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다만 진정 고민과 반성을 했는지는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소모적인 논쟁만큼은 그만했으면 좋겠다. 명가(名家)는 잘 몰라도 우리 사회가 명가(明家)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