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은섭 안양동안경찰서 유치관리팀 경장

 학교폭력 피해자의 자살 소식을 접할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저려 온다. 사망(死亡)은 사람의 심장과 호흡이 정지하는 것으로 죽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하지만 자연적인 죽음 외에 또 다른 사망사고로 우리의 학교가 멍들고 있다.

첫 번째로 사망(思亡)을 생각해 보자. 한자의 뜻만 본다면 생각을 죽이는 것이다. 타인의 생각을 무시하고 억압하는 것은 아무런 논거가 없는 부정을 위한 부정으로, 획일적이고 집단적인 생각을 강요할 수 있다.

무엇보다 타인의 인격과 독창성을 말살하고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흐리게 해 집단폭력으로 발현될 위험성이 크다.

두 번째는 사망(詞妄)이다. 다시 말해 언어폭력과 관련된다. 특히 남학생들에 비해 언어폭력과 근거 없는 소문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는 여학생이 많고 외부에서 관찰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심각성은 더욱 크다.

또 사망(嗣亡)이 있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은 타인과의 유대관계 속에서 생활양식을 학습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될까. 소위 ‘왕따’를 만들어 관계를 단절하고 스스로 사회적 동물로서 존재 자체를 거부하게 만들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하게 된다.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사망은 뜻만을 고려한 것으로 어법에 맞지 않다. 하지만 우리의 변죽을 울리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생각을 짓밟는 것, 세치 혀로 감정을 난도질하는 것, 그리고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위법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사람을 사망(死亡)하게 만드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방법에 차이가 있을 뿐 흉기로 사람을 해치는 것과 그 파급효과는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참혹한 사건이 학교에서 전해지기보다는 공동체라는 인식과 서로가 배려하는 분위기 속에서 기분 좋은 사망(賜望) 소식을 듣기를 원한다.

서로가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고 감정을 배설하는 말이 아닌 상대를 배려하는 말로 관계를 돈독하게 할 수 있도록 희망을 주는 사망(賜望)말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이 학교폭력으로 인해 고통받지 않고 즐겁고 행복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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