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정책을 내놓고선 자꾸만 번복하거나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면 정책의 신뢰성이 떨어진다.

최근의 ‘학교시설개선비 288억 원’ 사용처 파열음이 대표적인 사례다. 수십 년 전도 아닌 불과 넉 달 전에 편성한 예산을 도 집행부와 의회가 서로 ‘합의했다, 안 했다’며 다투는 촌극이 벌어졌다.

사용처에 대한 합의 없이 어떻게 예산이 편성됐는지 궁금해진다. 정작 문제는 ‘교육청 주장과 의회 중재안대로 학교급식시설 개선(211억 원)과 학교시설 증·개축(77억 원)에 사용하도록 남경필 지사가 대승적(?) 차원에서 수용하기로 했다’며 기존의 결정을 번복한 사실이다.

 남 지사는 예산이 초등학교 화장실 개·보수에 전액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무슨 이유로 갑자기 필요없어졌는지 궁금하다. 만에 하나 예산연정이라는 다음 단계의 정치적 목표가 수월하도록 ‘자녀들의 낙후된 화장실 개선’을 포기한 거라면 이는 심각한 배임행위다.

쪽지예산을 둘러싼 문제도 곱씹을수록 가관이다. 쪽지예산은 의원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지역구 챙기기용으로 스스로 끼워 넣은 묻지마 예산의 일종이다.

이런 예산 183억 원을 도 집행부가 보류시키고 있다는 보도다. 그래도 도의회가 심의·의결하고 도지사까지 최종 동의한 예산인데 공무원들이 집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좀 심하지 않나 싶다.

보류된 사유를 보면 ‘법적인 구비 요건, 내부 계획 수립 등에 미비점이 있다’는 식의 상투적이고 형식적인 답변 일색이다. 실질적인 답변은 도 기조실장의 언급에서 찾을 수 있다.

“예결위에서 증·감액된 부분에 대해 도 집행부 실·국장(우리들)에게 의견을 묻는 과정이 충분하지 않아 지연 현상이 빚어지지 않았나 판단한다….” 점잖게 말하자면 소통의 문제, 툭 까놓고 얘기하면 정치적 주도권 다툼이 문제의 본질이란 뜻이다.

이렇게 가면 결말은 뻔해진다. 협조와 양보가 아닌 반목과 대립이 득세하고 결국 연정의 기본 정신인 신뢰는 깨지게 된다. 물론 논란이 되는 사안들에 대해 쌍방 간 법적·도덕적 책임소재를 따지는 것은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필요한 과정이다.

훗날 연정이 성공하더라도 이런 상호 견제와 감독의 책임까지 소홀해선 안 된다. 그럼에도 이번 사태들이 소통의 방식에 문제가 있지는 않았었는지 짚어봐야겠다.

한편으로는 도지사와 도의원, 그리고 공무원들까지 혹시나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득실 관계에 너무 골몰했던 탓은 아니었는지 자문해 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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