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년 전 동일본 대지진과 동시에 후쿠시마 원전에 사고가 발생하며 단란했던 이웃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소나무숲을 자랑하던 센다이공항 주변 바닷가 마을에는 새로 심은 작은 나무들과 방파제를 짓는 인부들의 숙소와 건축장비·자재들만 남아 있다. 이창호 기자 ych23@kihoilbo.co.kr

2011년 3월 11일. 일본 국민들에게 이날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당시 리히터 규모 9.0의 동일본 대지진은 20m가 넘는 쓰나미를 몰고 왔고 2만여 명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갔다. 그날의 공포와 참혹한 기억은 일본인들에게 아직도 트라우마로 자리잡고 있다. <관련 기사 17면>

쓰나미의 중심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시를 지난 5일 찾았다.

참사 후 4년이 지난 현장은 참혹했던 당시의 기억을 지워 버리기라도 하듯 말끔히 정리됐지만, 쓰나미가 할퀴고 간 해안가 곳곳에는 작은 동산 위에 정자들이 들어서 그때를 기억하고 있다.

현지인 와타나베 히카리(33)씨에게 정자의 정체를 물었다.

“해안가에 세워진 정자는 단순한 전망용 정자가 아니라 쓰나미 피난처입니다. 대지진이 이곳 마을을 초토화시킨 뒤 공원으로 조성했지만 아직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쓰나미에 대한 공포가 남아 있어 높은 곳에 피난처를 만든 것이죠.”

정자는 여전히 일본인들에게 남아 있는 쓰나미에 대한 트라우마의 표현일지 모르겠다. 그만큼 4년이 흐른 지금도 쓰나미에 대한 공포가 여전한 것을 알 수 있다.

미야기현의 전체 수백㎞가 넘는 해안가 방파제에서는 토목공사가 한창이다. 방파제 공사 현장 옆에는 주민들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꽃밭과 작은 나무숲을 인공으로 조성하고 있다.

대지진과 원전사고, 쓰나미 순으로 몰려온 공포가 또다시 찾아올까 도호쿠 지방 3개 현에는 573개의 지역 방파제 공사가 계획 중이며, 211곳에서 진행 중이다.

방파제 공사와 농지 복구 작업 등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지난달 1일 개통한 도로를 타고 여전히 방사능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한 후쿠시마현으로 향했다. 원전사고 현장에 더 가까이 들어가 생생한 모습을 담고 싶었지만 현지인들의 만류로 사고지점 20㎞ 근처에서 다시 센다이시로 발길을 돌렸다.

현지인들의 적극적인 만류는 방사능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이웃 나라에서 방문한 이방인이지만 방사능 피해 우려는 국적을 불문한다. 이를 반영한 탓인지 일본인들에게 방사능에 대한 공포는 당장 먹을거리에서 나타난다. 정부에서 방사능 검사를 마친 필증을 농수산물에 붙여 놓지만 현지인들은 아직까지 ‘원산지 후쿠시마’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센다이공항 직원 오노데라 아키토(36)씨는 “솔직히 방사능 필증이 붙어 있다고 해도 후쿠시마산 농수산물은 먹질 못하겠다”며 “1년 전 아이를 낳았는데 산과 들에서 자란 나물 등을 먹일 때는 걱정이 앞선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미야기현은 현재 센다이시뿐 아니라 나토리시, 이와누마시 등 농지 복구 작업이 4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피해가 적어 2년 만에 다시 농사를 짓게 된 곳도 있지만 5년이 지나도 복구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문가 진단이 나온 땅도 있다. 농민들은 농지에 대한 보상은 이뤄졌지만 천직을 잃게 만든 대지진이 야속하기만 하다.

4년간의 복구 과정에서도 언제든 쓰나미라는 대재앙이 닥칠 수 있고, 그 죽음의 숨 막히는 공포에 또다시 처해질 수 있다는 트라우마는 지금도 일본인들에게 계속되고 있다.

일본 미야기현=이창호 기자 ych23@kihoilbo.co.kr
            강나훔 기자 hero43k@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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