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자로 세월호 참사 1주기가 지났다. 그런데 ‘도대체 왜 304명의 많은 인명이 구조되지 못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아직도 속 시원히 밝혀지지 않았다.

세월호 승무원 등에 대한 1·2심 재판 과정에서 이준석 선장 등 선원들이 ‘대기하라’는 안내방송을 믿고 배 안에서 기다리던 승객들을 외면한 채 자신들만 빠져나온 사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당시 현장 구조에 나섰던 해경도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재판부는 “사고 당일 오전 9시 44분께에는 대부분 승객이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사실을 알 수 있었으므로 대공 마이크 등으로 퇴선 방송을 하거나, 해경 직원들에게 퇴선을 유도하도록 지휘했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늑장 대응’도 구조 실패를 초래했으며, 해경과 해군 등 관련 기관 간에 상황이 적절히 공유되지도 못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는데, 이는 인간이 사회적 존재로서 사회생활을 떠나서는 인간으로서 생활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가 유지·발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회구성원인 인간 사이의 ‘신의(信義)와 성실(誠實)’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민법 제2조 제1항은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신의칙(또는 신의성실의 원칙)(Principle of Good Faith: Prinzip von Treu und Glauben)’이라 부른다.

신의칙은 그 기원을 로마법에 두고 있는데, 이후 프랑스민법과 독일민법에서 이에 관한 규정을 뒀고, 스위스민법은 신의칙을 민법 전체에 걸치는 최고 원리로 삼았다. 우리 민법은 스위스민법의 규정을 모델로 해 규정한 것인데, 오늘날 신의칙은 사법(私法)뿐만 아니라 공법(公法) 분야에도 적용되는 중요한 법원리이다.

신의칙에서 말하는 ‘신의와 성실’은 사회공동생활의 일원으로서 서로 상대방의 신뢰를 헛되이 하지 않도록 성의를 가지고 행동하는 것을 뜻하며, 원래 신의나 성실이라는 것은 사람의 행위나 태도에 대한 윤리적·도덕적 평가를 나타내는 말이다. 말하자면 사회생활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요구가 ‘신의와 성실’이라고 할 수 있다.

부모들이 자식을 기를 때 자주 들려주는 말들, 예를 들어 “거짓말하지 마라”, “약속을 잘 지켜라”, “의리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 등등이 바로 이 ‘신의와 성실’에 대한 강조인 것이다.

물론 ‘신의와 성실’만으로 모든 일이 완전하게 해결될 수는 없다. 문명이 고도로 발달된 현대사회에서는 대다수의 직업인들이 ‘전문지식·기술’을 갖춰야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현대사회의 직업인들이 필요한 전문지식·기술을 갖추는 일도 ‘신의와 성실’의 한 요소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떻든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은 대형 인명사고의 발생에 1차적인 책임이 있는 자들로서 ‘신의와 성실’의 요구를 크게 위배했다. 승객들이 망망한 바다를 항해하는 배에 몸을 실은 것은 선장과 선원들이 배를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운항할 것이라는 신뢰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선장과 선원들은 승객들의 신뢰를 완전히 내팽개치고 위험한 상황에서 자신들만 배를 빠져나온 것이다.

‘신의와 성실’을 구체화한 말이 ‘책임감’이란 말일 터인데, 사회생활에 있어서 ‘책임감’처럼 중요한 말이 또 있을까. 사회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역할을 ‘책임감 있게’ 수행할 때 비로소 사회가 안전하게 되는 것이다.

요컨대 사회생활에 있어서 ‘신의와 성실’ 그리고 ‘책임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넘기면서 승객을 놔두고 빠져나온 선장과 선원들이 한없이 원망스런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세월호 유족들이 진상 규명을 외치다 경찰에 강제 연행되고, 고위공직자들이 부패 혐의를 받아 허우적거리는 위중한 이 시기에 국민 각자와 공직자 그리고 대통령은 ‘신의와 성실’ 그리고 ‘책임감’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뒤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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