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문명이 농경사회에서 산업화 사회로 이동하는 데 기여한 결정적인 이슈는 과학기술의 발달이다. 과학의 발달은 곧 인류의 삶 자체를 크게 변화시키며,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철학의 영역까지 침투해 과학을 알지 못하면 철학할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과학은 이제 기술적인 측면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상에까지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과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있다. 나는 과학이란 ‘관측가능한 자연현상을 측정하고, 측정한 결과를 분석하고, 논리적·수리적으로 진술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한다.

과학은 크게 실험과 이론으로 나누는데 측정해 그 값을 분석하는 것은 실험이고, 논리적·수리적으로 진술하는 것은 이론이다.

과학자들은 자연현상에서 무엇을 측정해야 할지, 어떻게 측정해야 할지에 대해 늘 고민하고 있다. 21세기 ‘토머스 쿤’으로 불리는 장하석 교수는 『온도계의 철학-측정 그리고 과학의 진보』라는 저서를 통해, 온도계가 없던 시절에, 온도라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고, 온도를 어떻게 측정했는지에 대한 과학자들의 고민들을 세밀하게 설명하고 있다.

물리학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오래된 물리량 중에 하나는 ‘속도’다. 물리학적 정의로 말하면, ‘속도란 단위시간당 이동한 거리’, 즉 일정한 시간동안에 물체가 얼마큼 움직였는지를 측정하는 것이다.

속도는 기원전 고대 희랍 자연철학자들이 자연현상을 논할 때, 이미 생각했던 개념이다. 그들이 속도를 다뤘던 가장 큰 이유는 쉽게 관측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체가 속도를 갖는다는 것은 힘이 있다는 증거라고 했다.

따라서 물체의 속도를 잘 관측하면, 물체에 주어지는 힘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우주에서의 별들은 어떠한 힘들에 의해서 움직이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할 수는 없었다.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신(神)’의 도입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우주는 신의 영역이고, 지구는 인간의 영역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중세의 신학사상을 거쳐 현대 우리의 사상까지도 크게 영향을 주고 있다.

‘속도’라는 물리량은 또다른 측면에서 우리에게 큰 영향을 줬다. 뉴턴이 미분이라는 수학적 개념을 통해 속도를 정의하면서, 속도는 시간에 따른 거리의 변화율이라는 개념이 인문학 전 분야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는 ‘stock(저량)’이라는 개념 뿐만 아니라, ‘flow(유량)’라는 개념도 현상을 분석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는 것이다.

또 경제학에서 비용이나 수입보다 한계비용이나 한계수입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더 크다는 것이다. 즉 현재의 상태가 어떠한지 보다 현재 상태의 변화되는 추이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어떠한 변화라고 하더라도, 변화의 속도가 늦으면 대처가능이 높으나, 변화의 속도가 빠르면 대처가능이 어렵다. 전세계 위기는 바로 변화의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세계사회의 변화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우리가 어떠한 지식이나 기술을 습득한 이후, 이를 활용하고자 할 때 즈음에는 이미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이 시장에 선점된 상황이 된다. 전에 배운 지식과 기술의 부가가치가 떨어진 상황이 되며, 또 다른 지식과 기술의 습득에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들보다도 휠씬 빠른 사회의 변화의 속도를 겪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문제가 우리나라에 재앙수준이 될 것으로 예측하는 이유는 선진국보다 휠씬 빠른 속도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사회의 변화 속도가 늦다면, 굳이 미래연구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최소한 한 세대 안에는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미래사회의 변화가 우리의 삶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처럼 급변하는 사회에서 30년 이후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무의미하고, 오히려 단기 정책을 잘 세워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급변할수록 더 길게 보아야 한다.

급변한 상황에서의 변화율은 의미가 없다. 오히려 시간축을 길게 잡아, 그 현상의 패턴을 발견해야 한다. 1999년에 출판된 『빌게이츠 @ 생각의 속도』에서는 인터넷혁명을 통해 ‘생각의 속도로 움직이는 비즈니스’를 설명했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무장해야만이 생각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인천 문제 해결의 관건도 생각의 속도를 얼마만큼 따라잡을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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