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기자단에서 작가 인터뷰로 나를 추천 받았다고 연락이 왔다. 유명세를 타는 작가가 아니라고 사양했더니 연륜이 있는 작가분과 인터뷰를 하고 싶다며 약속을 잡는다. 인터뷰 날짜 전에 질문할 항목을 메일로 보내왔다.

 항목이 9개나 된다.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나 호기심이 많은 학생들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명확한 답변이 될까 고민이 되었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우선 본인 소개 먼저 부탁드립니다.” 작가로 호칭 받는 나는 누구인가? 작가로 살아온 20여년의 시간이 파노라마로 흐르면서 여러 감정 태래가 풀려 나온다.

 보통 사람보다는 여린 심장으로 삼라만상을 안고 살았다. 새순 돋아나는 소리도 들었고, 꽃 피고 지는 음색도 들었고, 해 그림자의 길이 다른 사연도 들었고, 천체가 운행하는 화음도 들었고, 그 모든 것에 반응하는 가장 중요한 사람의 이야기도 들었다.

 햇살을 등 뒤로 받으며 무작정 걷고 싶은 봄날, 부신 햇살의 온기가 등 뒤쪽에서 가슴으로 전해지며 무심한 듯 무심하지 않은 봄날이 도란도란 흐른다. 맑은 노랑색 봄은 실핏줄 가는 혈관 끝까지 봄바람을 불어넣어 혼자여도 외롭지 않다는 봄을 걸어본다. 흐드러져서 꽃이 시리다.

꽃 피우는 봄에는 기분이 좋아지고 미소가 입가에 걸려야 정상인데 눈부신 봄날일수록 가슴이 서늘해 오한이 난다. 무뎠던 감정이 아지랑이 되어 피어오르면 심장이 흔들린다. 출렁다리는 봄이 무르익을수록 진폭이 커졌다가 땡볕 뜨거워지는 여름 초입 길목에서 잦아든다.

작가라는 이름을 걸게 된 20년 전, 작가란 말이 엄청난 중압감으로 심장을 조여서 가위눌린 새벽을 맞이하기가 일수였다.

소박하게 작가의 길을 가자, 계절을 앞선 비닐하우스에서 속성배양하지도 않을 것이고 생기 잃은 식감을 양념 범벅으로 덮지도 않을 것이고 제대로 잘 숙성시켜 깊은 맛을 내는 작품을 쓰자 내심 거창한 각오를 했었다.

치기를 넘고 보니 작가로 어설펐던 지난 흔적이 민망해진다. 그래도 자주 다녀 길을 만들었기에 지금은 덜 헤매게 되었고 세상 당신을 품을 가슴이 풍만해졌다.

사람들은 분명 무언가를 하며 생을 산다. 밥벌이를 위한 업이 주가 되는 생활 같아도, 취미든 연을 쌓는 관계 만들기든 주업에 견줄만한 영향력으로 사람의 생애에 색을 입힌다. 가끔 전망 좋은 곳에서 경치를 구경하다보면 작가도 세상을 조망할 수 있는 자리를 가진 특권을 얻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타인의 생을 조망하는 일이 늘 행복할 수는 없어도 사람에 심취해서 탐구하는 일은 흥미롭다. 취재 온 학생 둘은 인터뷰 내내 어떤 답이 나올까 놓치지 않으려고 긴장하고 있었다.

두 학생의 탱글한 눈빛이 에너지 업이라 좀 부드럽게 풀고 가잔 생각이 들었다. 10대의 특권인 연초록의 싱그러움이 직설에 얹혀서 패기 충만 상태다. 애드벌룬으로 날아올라 팽팽한 의욕이 막내 동서네 똘똘한 조카애들 같아 귀여웠다.

 ‘작가를 꿈꾸는 학생들은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가요? 작가의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무엇이 있었나요? 작가라는 직업의 메리트를 꼽으라면 무엇이 있나요?

글을 쓰기 위한 소재는 어디서 얻으시나요? 글 쓰는 시간 이외에는 어떤 활동을 하나요? 작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가요?‘ 등등의 질문을 받으니 내가 나에게 묻고 싶은 내용이라 곰곰 나를 돌아보게 된다.

 경쟁 치열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성공이나 재테크 같은 실용서가 아닌 문학은 사치가 돼 버렸다. 그러기에 바싹 말라 부서질 것 같은 세상 사람의 가슴을 촉촉한 생기로 살려줄 문학 작품을 창작하는 작가는 특별하다며 위안해 본다.

작가로 살았기에 경험한 사람 이야기가 있고, 바닥에서 위로 솟구칠 힘을 얻었다는 독자도 만났고, 따뜻한 온탕에 몸을 담군 것 같이 노곤해져 날카로워진 심장이 말랑말랑해져 아픔을 덜 수 있었다며 고마워하는 편지도 받았다. 세상이 왜? 당신이 왜? 상대를 들여다보면 측은이 생겨난다.

나를 부르는 별칭인 나무늘보의 느림이 내게는 득이 되었다. 좀 천천히 세상을 대하면 글을 쓸 소재가 다양하게 보인다.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고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다면 감사하다. 세상 풋내기 학생들과 가진 인터뷰가 작가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내게도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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