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엽 (사)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교수 겸 기획본부장

 초등학교 6학년 끝 무렵 중학교 입학시험을 치르려고 새벽같이 집을 나선 나를 골목 어귀 어디쯤에서 불러 세우는 굵은 목소리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귀했던 피로회복제 드링크 한 병을 손에 드신 채 우리 집을 향해 잰걸음으로 달려오신 담임선생님의 목소리였다. “긴장하지 말고 평소대로 아는 문제부터 풀어 가라”시며 어깨를 두드려 주신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아마 선생님은 그 한마디를 하시려고 새벽잠까지 설치시며 우리 집을 찾으셨을 것이다. 평소에도 태도와 자세에 대해 엄히 꾸중하시고 기본적인 예의범절을 중히 여기시던 그런 분이셨다.  

현대 조직생활은 관계자산의 확보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 1983년 하워드가드너의 「마음의 틀: Frame of Minds」에서 대인지능은 결국 감성지능과 사회 지능으로 어우러져 이야기 되고 있다.

 타인과의 교감, 공감능력, 그러기 위한 소통으로 확대 재발견되고 적용되는 것이다. 결국 사람을 대할 때 선입관 없는 지극 정성은 관계자산 확보에 가장 기본이 된다는 의미이다.

동서고금 이러한 관계자산에 대한 문제는 분명하고 단단하다. 제(齊)나라 선왕(宣王)이 맹자에게 나라와 백성을 잘 다스리는 가르침을 청했을 때 맹자는 “근본적인 문제부터 손을 써야 합니다. 철저하게 정치를 혁신하십시요. 인덕을 베푸십시오. 어린아이를 교육하고 노인을 잘 보살피십시오.

그러면 백성은 편안해질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천하의 농부들이 제 나라에 와서 농사를 짓고 싶어 하고 상인은 역시 제나라에서 장사를 하려 할 것입니다. 정말로 이렇게 할 수 있으면 누가 감히 대왕을 가로막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도덕으로 왕도를 이루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으로부터 이천여년 훨씬 이전에도 혁신이나 진화, 나아짐은 현재 상황에서의 기본적 가치나 정서, 관계성을 서로 잘 지켜 가면 된다는 역설을 설파한 것으로 풀이된다.

내일이면 스승의 날(5. 15)이다. 우리 주변에 그동안 우리의 오늘을 있게 해 준 스승들을 생각하고 추념하며 기리는 행사들이 곳곳에서 열리곤 한다. 더불어 스승, 은사, 선생님 같은 단어들이 잠시나마 넘치게 우리들 입에서 회자된다.

 아직 미욱해 많은 것을 배워야 할 때 부모님과 스승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좌표를 설정하는데 거의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

그림자 운운은 아니라 할지언정 어렵고 남다른 존재감으로 주변을 감싸고 있었으며 가르침에 이르지 못함에 늘 송구스럽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런 스승의 존재는 사회생활에서도 여전히 존재한다.

직장생활 할 때 역시 스승은 상사였고 직장을 떠난 지금 역시도 내게는 주변에 훌륭한 스승이 많이 계신다. 따르고 싶은 인생관으로 나를 이끄는 그런 분도 계시고, 사회적 역할모델로 비추어져 스승의 흠모를 불러일으키는 그런 분도 계시며, 따뜻한 인간적 교분을 나누어 주는 그런 스승 같은 분들이 주변 도처에 표표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것은 분명 내 복이고 행운이란 뜻이다.

배우고 따르면 그 자체가 내겐 새로운 혁신이 되고 삶의 방식이 되며 보다 나은 내일이 열린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젠 누굴 가르치고 해야 할 나이지 뭘 더 배울 나이는 아니라고 하지만 꼭 그렇게 교과서적 잣대로만 이야기 할 필요 역시 없을듯 하다. 곳곳에서 혁신을 이야기하고 혁신을 해야만이 발전이 있다고 떠든다.

혁신은 필요하고 반드시 수용되어야 할 사회원리지만 기본을 도외시한 혁신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고 본다. 여기서 말하는 기본은 우리가 스승에게서 배운 어린 시절의 가르침이라고 과감히 말할 수 있다.

과학문명의 진보와 혁신은 우리를 훨씬 편하게 살도록 이끌었지만 서로 지켜야 할 기본적인 가치는 그만큼 폄훼되고 손실이 났다고 본다.

 그래도 주변을 둘러보면 스승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감싸고 있는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다. 남보다 훨씬 앞선 길을 걸으면서도 그 보폭은 주변을 항상 동반성장케 만드는 힘을 가진 그런 분들이 의외로 많다.

아직 많은 것을 배워야 하며, 그 배운 것들에 대한 경외심으로 하루하루 무겁게 살아야 한다. 혁신은 이러한 기본에 바탕을 두고 나아감을 스승의 날을 맞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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