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경환 ㈔녹색경영연구원 교수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훗날 발견된 일기장에 남긴 유명한 일화가 있다. 사랑했던 여인이 청혼을 했으나 그는 생각하는 시간을 달라고 했다. 결혼을 해서 좋은 점과 나쁜 점에 대해 철학적 분석을 하느라 무려 7년이나 걸렸다.

 그 결과 결혼을 해서 좋은 점 354가지, 나쁜 점 350가지라는 결론을 얻었다. 좋은 점이 4가지 더 많기 때문에 결혼하기로 결정하고 그 여인의 집을 찾아갔으나,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해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뒤였다. 그 후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고 한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이 있다. 불교에서는 인연(因緣)을 겁(劫)으로 비유한다. 1겁의 시간은 물방울이 떨어져 집 한 채만한 바위를 없애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힌두교에서는 43억2천만 년을 1겁이라고 한다. 특히 부부가 되려면 7천 겁의 인연을 거듭해야 한다고 한다. 이와 같이 남녀가 만나 부부가 되기 위해서는 영겁(永劫: 無始無終의 영원한 세월)만큼이나 길고도 깊은 인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혼의 실상은 불가에서 의미하는 본질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MBN 뉴스(2015년 4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이혼한 부부가 하루 평균 316쌍이었다고 한다.

또 결혼을 기피해 노총각·노처녀가 넘쳐나는 ‘결혼 안 하는 대한민국’이 돼 가고 있다. 지난해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은 부부는 11만5천 쌍이었다. 계속해서 줄어들던 이혼 건수가 최근 3년간 다시 높아지고 있다. 바로 황혼이혼 때문이다.

30년 이상 함께 산 부부의 이혼율이 한 해 전보다 무려 10% 넘게 늘며 증가 폭이 10년 전의 2배를 넘어섰다. 불만과 갈등이 있지만, 자녀 양육과 교육 문제로 참고 살다가 아이들이 다 성장한 뒤 갈라서는 것이다.

이제 이혼이 무조건 참고 이겨내야 하는 문제가 아닌 지혜롭게 해결해야 할 과정으로 인식해야 할 때다. 최근에는 ‘이혼 플래너’라는 신종 직업까지 등장했다.

언뜻 용어만 보면 이혼을 부추기는 직업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혼에 직면한 위기의 부부 문제를 예방하는 데 1차적인 목적이 있고, 최소한의 비용과 최소한의 심리적인 부담을 위한 이혼 플랜을 세워 주는 일을 한다.

영국 LAT(Living Apart Together)족은 결혼 또는 사실혼을 통해 부부관계를 유지하지만, 같은 집에 살지 않고 서로 다른 집에 거주하는 부부들을 의미한다. 서로 가까운 곳에 살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달려가 도움을 주거나 위로하고 사랑을 나누는 등 특별한 관계를 유지한다.

서로의 성격, 취미, 습관 등 살아가는 생활 가치관이 다른 부부간의 갈등을 피하면서 각자의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는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영화배우인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 부부가 대표적인 LAT족이다. 일부에서는 별거와 다를 게 뭐가 있느냐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지만, 영국 LAT족은 200만 명이 훨씬 넘는다고 한다.

이런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듯 「결혼해도 괜찮아」란 책이 화제가 되고 있다. ‘결혼해도 괜찮아’라는 말에는 결혼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는 두 가지 의미가 모두 들어 있다.

이제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저자는 우리나라 첫 여성학자인 박혜란 교수다.

올해로 70세 나이인데, 45년의 자신의 결혼생활을 진흙탕에 비유하며 “부부가 함께 빠지면 진흙탕도 놀이터가 될 수 있다…”고 얘기한다.

특히 이 책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결혼정년제도’ 제안을 파격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결혼생활에도 정년을 둔다면 좀 더 서로가 아끼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부부관계가 지속되지 않을까. 결혼한 후 20년이 정년인데, 자녀들 다 키운 시기에 결혼기간의 시효가 소멸된다.

이혼할 경우도 정년이 끝나면 깨끗이 헤어질 수 있고, 부부가 합의하면 정년을 더 연장할 수도 있다. 이색적인 제안이지만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든다.

5월 21일 오늘은 부부의날이다. ‘21일’이란 숫자는 둘(2)이 하나(1)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 넓은 세상에 수많은 사람 중에 널 만난 건 내겐 너무 특별해. 둘이 하나될 수 있도록, 둘이 하나될 수 있도록, 어떤 현실도 서로 참아 낼 수 있어. 너 없는 이 세상은 생각할 수도 없어. 내 목숨만큼 널 사랑해….” 가수 김종환의 ‘둘이 하나되어’란 부부의날 노래다. 노랫말처럼 둘이 하나돼서 부부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행복한 가정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는 날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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